[류형근의 음악뒤집기]삶을 노래하는 이상은의 'She Wanted'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0시 11분


훤칠한 키에 탬버린을 치며 '담다디'를 노래하던 가수 이상은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아마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그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기억나는 잊혀진 이름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획사의 '만들어진' 가수의 길을 택했던 그가 돌연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며 떠난 유학길에서 보내온 그녀의 음악은 이상은을 뮤지션으로 기억하게 해 주었다.

91년 3집 '더딘 하루'를 시작으로 92년 'Begin', 그리고 93년 자기 이름을 타이틀로 삼은 'Lee Sang Eun' 등의 앨범으로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언젠가는'에서 들려주었던 젊음과 사랑의 소중함은 그의 음악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2년 뒤 이상은의 소식은 일본에서 전해지기 시작했다. 타케타 하지무라는 음악 파트너를 만난 그녀는 조용히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오며 '구도자'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벨, 공, 북 등의 타악기와 현악기가 조화를 이룬 그의 음악은 기계음 섞인 세상의 음악이 아닌 주술적인 한편의 설화와 같았다. 특히 '공무도하가'에서 들려주었던 이런 분위기는 현재까지 이상은의 음악을 설명하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동양적인 리듬라인, 단순한 코드진행, 그리고 이 위에 더해진 어쿠스틱한 사운드는 이후 '외롭고 웃긴 가게', 'Lee-Tzche'까지 이어지며 이상은만의 카리스마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00년 가을 우리는 이상은의 음악을 영화 '봉자'의 사운드 트랙을 통해서 만난다. 지난해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을 통해 사회적 이슈가 된 서갑숙이 주연한 이 영화를 통해 이상은은 한 여인의 자아 찾기를 음악으로 이야기한다. 자칫 영화 타이틀이 주는 촌스러움이나 영화의 강한 드라마에 그녀의 음악이 묻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였을까? 영화 사운드 트랙을 통해 이상은은 한음한음 자기 고백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귓전을 맴도는 낮은 읊조림과 나로 지칭되는 1인칭의 가사들은 먼길을 돌아온 이상은의 음악적 행보와 닮아 있다. 때로는 내 안에 갇힌 나를 원망하고, 때로는 내 안에 있는 아픔을 모두 죽이고 싶어하는 이상은의 방황은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성녀의 삶을 꿈꾼다. 그리고 이런 이상은의 꿈은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북 등 세 가지 악기를 넘지 않는 편곡을 통해 미니멀한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려진다. 마치 붓의 깊이로 빈 여백이 채워지듯이 '성녀', '튜브-자두', 'The World Is a Dream Of God' 등의 트랙에서 들려지는 이상은의 독백의 깊이는 앨범 전체를 차곡차곡 채워간다. 이렇듯 단아한 이상은의 자기고백 앨범 'She Wanted'를 통해 우리는 '담다디'의 어릿광대 이상은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뮤지션 이상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류형근 (객원기자) atari@donga.com

♬ 노래듣기

  - She Wa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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