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태권도공원' 더 늦출수 없다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15분


국기원(國技院)의 예전 모습이 떠오른다. 한강 남쪽 역삼동 산꼭대기에 청기와가 얹혀진 건물은 참 근사했다. 그 건물은 국기원이란 말의 어감을 타고 때로는 근엄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또 어떤 때는 자랑스럽게 다가왔다. 국기원이 문을 연 게 1972년이니 한 동안 그랬을 터이다.

‘태권도의 중심’인 국기원은 지금 거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빼곡이 들어선 높은 건물에 둘러싸여 출입 길마저 번거롭다. 그래서 인지 예전에 그토록 의연해 보였던 건물이 보통의 체육관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역사의 무게가 주는 태권도의 고향 같은 이미지가 퇴색한 느낌이다.

사실 태권도는 국기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권도협회 중앙도장으로 준공돼 이듬해 국기원으로 바뀐 뒤부터 태권도는 세계화의 길로 매진했다. 73년 세계태권도연맹(WTF) 창립, 80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승인종목, 88년과 92년 올림픽 시범종목, 2000년 올림픽 정식종목 등등. WTF총재인 김운용IOC위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이 시기는 언젠가는 ‘국기원 시절’로 기록될 만 하다.

‘언젠가는’이라는 말은 바로 ‘태권도공원’의 건립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공원이 국기원의 위상을 이어 받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 공사가 시작돼 2007년이면 태권도의 새로운 성지가 태어난다. 1994년 IOC총회에서 태권도가 2000년 올림픽정식종목으로 결정된 것을 계기로 거론되기 시작한 ‘태권도성전’ 건립의 실현은 반가운 일이다.

정부의 계획은 100만평 규모의 부지에 태권도 전당, 수련단지 이외에 호국청소년단지, 관광단지, 영상단지, 한방기공단지를 세우는 것으로 돼 있다. 태권도 정신 함양과 수련의 장소로 뿐 아니라 관광공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성지순례’를 원하는 세계 150여개국의 5000만 수련자와 1만4000여 재외 사범만 생각해도 태권도공원이 명소가 될 것은 분명하다.

지방자치단체가 태권도공원 유치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부지 100만평을 제공하고 건립지로 선정되면 2000억원의 정부예산으로 전당과 수련단지가 완성(나머지는 민자)되고, 관광수입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유치에 나선 24개 지자체가 너나없이 로비를 포함한 출혈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는 건립지 결정시기를 7월에서 10월로 연기하며 전전긍긍하는 형세이다.

그러나 정부가 엉거주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형식이든 후유증은 남겠지만 정치적 논리를 배제한 투명한 심사를 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윤득헌<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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