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보의 옛날신문읽기]그 감명깊던 밤의 랑디부!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22분


제법 알파벳을 배운 티가 나는 젊은 남녀가 이런 대화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여 “장자는 서양에 대결하는 동양의 메씨아야.”

남 “상당히 모던한 생각으로 생각되는 걸.”

여 “호호호, 나야 모던·껄 아니겠어?”

남 “근데 우리가 이렇게 랑디부하는 걸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하지....”

여 “랑디부 없는 젊음은 고목이야....”

청취소감이 어떻습니까? 저는 이것들이 미쳤나, 하고 한번 돌아볼 것 같습니다. 별 이상한 화법을 다 구사하는군, 이런 생각도 드는군요. 아, 그리고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어색하고 느끼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느냐구요? 이런 얘깁니다.

1960년 조선일보 문화면을 보니 ‘문화용어 풀이'라는 작은 상자기사를 연재하고 있더군요.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연재의 발상과 내용이 너무도 흥미로와 몇 개 주섬주섬 베껴왔습니다. 어쩌면 그 ‘문화용어 풀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외국어고, 외래어일까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자 한번 봅시다.

랑디부 : 밀회.

만날 약속을 한다든가 약속한 장소를 뜻한다. 그러나 <랑디부>란 복합된 외래어를 구태여 쓰게 된 이유는 숨어서 약속하고 숨어서 만나는 남녀간의 밀회를 표현해주는 우리말이 없고 있다손 치더라도 낯선말로 표현하면 덜 쑥스러워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말은 거의 밀회란 뜻으로 국한되어 쓰이게 되고 이따금 회합 또는 교착(交錯)란(이란) 뜻으로 쓰인다.

(예 : 그 영화의 <크라이막스>는 <랑디부> 장면이다. <랑디부> 없는 젊음은 고목이다. 웃음과 눈물의 <랑디부>, 그 감명깊던 밤!)

모던 : 본래의 뜻은 고대에 대한 요즈음 현재 근세라는 뜻이나 그 뜻과는 달리 새로운 내용을 가지게 되었다. 즉 세련되고 현대감각이 풍기는 새 <스타일>을 칭할 때 흔히 <모던>을 쓰는데 <<현대의 멋>>을 알고 <<사교>> <<교우>>에 능하고 나아가서는 교양이 있는 현대 지성을 가진 사람을 <모던이스트>라고 말한다.

(예 : 저 여성은 <모던·껄>이다. A군은 상당히 <모던>한 생각을 하고 있다.)

메씨아 : 원어 Messah=구세주

성서에서 많이 쓰이는 말로서 독일의 음악가 <헨델>이 성담곡(聖譚曲)의 표제로 이 <메씨아>란 말을 써서 널리 알려진 것이다. 기독교시대 유태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바랬던 구세주를 뜻하고 기독교에서는 <크리스트>를 <메씨아>라고 부른다. 이와같은 뜻이 전용하여 몹시 기다리웁고 바라운 사람 또는 공궁에서 구해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을 <메씨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 장자는 서양에 대결하는 동양의 <메씨아>다. 내가 몹시 궁했을 무렵 그 친구는 <메씨아>처럼 나타났다. 그분의 웃음은 우울하던 내 젊음의 <메씨아>였다.)

어떻습니까. 친절하게 예까지 들어주고 있군요. 그런데 60년이 어떤 연대입니까. 초근목피니 보릿고개니 하는 말들이 일상용어로 쓰이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 배고픈 독자들에게 ‘모던·껄'이란 잉글리시와 ‘랑디부'란 프렌치를 가르쳐야 했다니...

추신 1 : 근데 왜 느끼하지요?

40∼50대 된 남자들은 ‘츄라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트라이'도 아니고 ‘추라이'도 아니고 ‘츄라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나이좀 드신 분들이 ‘츄라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좀 느글느글하고 그렇습니다. 1960년도의 ‘문화용어 풀이'를 읽는 느낌도 그랬습니다. 독자들은 어떠하신지.

추신 2 : 1960년도의 기자는 남녀간의 밀회를 <랑디부>로 표현하면 덜 쑥스럽다고 그러는군요. 우습지요? 우리가 지금도 아내란 말이 뭔가 어색하여 와이프라는 말을 사용하는 건 떻습니까?

늘보<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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