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책사람세상]청주 인쇄출판박람회 가보니

입력 2000-09-29 18:41수정 2009-09-22 02:5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000 청주인쇄출판박람회에 다녀왔다. 왜 청주인가 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는데,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간행된 직지(直指·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다. 흥덕사지에는 현재 고인쇄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뜻있는 시민들과 청주시가 국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직지를 찾고(상하권 중 하권만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직지의 문화적 의의를 알리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람회의 백미는 문자문화 관련 희귀 유물이 다수 전시되고 있는 ‘문자역사마당’이라고 생각한다. 인상적인 것으로 고대 근동의 문자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부적, 인장, 점토판, 토기 등의 유물이 있는데, 특히 수메르인들의 인물 모양 부적(기원전 4000), 신전 건축에 사용된 점토못(기원전 2200), 악카드어 점토판 계약서(기원전 2000) 등이 눈길을 끈다.

그밖에 16세기 예맨의 유태인들이 사용한 양피지 두루마리 성서, 태국 수코티아 왕조(1238∼1438)의 비문, 로마 황제들의 얼굴이 새겨진 주화 등도 인상적이다. 66년경에 이집트에서 주조된 네로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주화의 경우, 현존하는 8개 중의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박람회의 주제가 ‘문자문화의 지난 천년, 새 천년’이고 보니, 새 천년에 해당하는 전자책, 디지털, 인터넷 관련 전시관도 없을 수 없다. 인류 문자의 기원이라 할 수메르 문자에서 디지털화한 문자에 이르는 긴 세월을 포괄하는 셈인데, 옥의 티라면 디지털, 인터넷 전시관은 관련 업체의 홍보관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문자문화의 미래를 조망해보는 자리로서는 다소 부족하다.

문자역사마당이 돋보이는 것은 고대 근동사학자인 조철수 선생(히브리대학 고대근동학과 객원교수)이 전시물 관련 고대어 문장을 충실히 풀이해 놓았기 때문이다. 유물 자체는 수 천년 전의 흙덩어리에 불과하며,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낼 때만이 문화적으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디지털, 인터넷 관련 전시관도, 새로운 매체환경이 문자문화와 관련하여 지니는 문화적, 사회적 의의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정부 당국에서 전자책 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1국민 1전자책 갖기 운동’이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가져올 문화적 파급 효과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선행되었는지 의문이다. 과거 문자유산의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듯이, 미래 문자매체의 파급효과를 비경제적인 측면에서 검토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득실을 따지는 계산에 앞서 의미를 성찰하는 지혜가 아쉽다.

표정훈(출판칼럼니스트)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