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빛과그늘]젊은 화가 레베카 스미스

  • 입력 2000년 9월 28일 19시 43분


예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젊은 화가 레베카 스미스씨(34)는 1년 전에 뉴욕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1년 사이에 그녀의 인생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다.

물론 그녀가 화가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그녀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꼽는다면, 브루클린의 그린포인트에 원룸 아파트를 구해 주말에만 문을 여는 화랑을 시작한 것, 그 아파트에 거리에서 발견한 물건들을 갖춰놓은 것,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이름의 개를 기르게 된 것 등이 있다.

피츠버그 외곽의 소도시에서 자란 스미스는 언제나 시골을 떠나 뉴욕에서 ‘돈은 없으나 젊은 예술가’로 살아가는 특권을 누리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과거를 벗어버리고, 뉴욕의 주소를 갖게 되면 벌써 잭슨 폴락과 그의 친구들이 그리니치 빌리지를 쏘다니던 뉴욕의 위대한 전통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대부분의 젊은 예술가들이 돈이 없어서 맨해튼에서 살지는 못한다. 또한 문화의 상품화가 예술을 훼손시켰다는 비난도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하다.

그러나 스미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면 예술에 헌신적이고 가난에 익숙한 예술가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뉴욕에 새로 도착한 젊은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아파트와 일자리가 그것이다. 가장 인기가 좋은 일자리는 당연히 화가의 조수이다. 잘만 하면 미술계의 궤도 속으로 즉각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뉴욕에 도착한지 48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예일대 동문이며 그녀의 세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 중의 하나인 리사 유스카배지씨의 조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화실에서 일을 돕고 자료를 정리하는 대신 유스카배지의 셔츠를 찾으러 세탁소로 심부름이나 다니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1주일만에 해고를 당했다.

스미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가가 되기 전에 런던의 버려진 창고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곤 했던 다미엔 허스트씨처럼 자신의 화랑을 열기로 했다. 그러나 빚을 얻어 화랑의 문을 연 후 그녀는 동료들로부터 자신이 주목을 끌기 위해 화랑을 시작했다는 냉소적인 말을 들을까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화랑 역시 몇 달이 지나도록 전혀 수입원이 되어주지 못했다.

빚이 늘어나자 그녀는 추첨을 해서 경품을 나눠주는 행사를 열어 입장료로 1인당 100달러씩 받아 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녀는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했다. 그녀의 화실에 있는 그림들은 모두 뉴욕에 오기 전에 그린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전화 자동응답기에는 이런 말이 녹음돼 있다. “안녕하세요? 난 아마 지금 집에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요.”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home/20000917mag―solom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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