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용관/“국민을 생각해야”

  • 입력 2000년 9월 27일 18시 40분


“의료계의 투쟁은 의사의 진료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확립하기 위한 역사적 사명이다.” “이제 총진군의 준비가 다 됐다. 우리의 정의로운 투쟁 대열에 전사로 모두 참여하자.”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를 시작하며 26일 의사들이 한 다짐이다. 마치 성전(聖戰)을 치르는듯 엄숙한 모습이다.

민감한 문제들을 논의해야 할 협상테이블에 의료계는 의쟁투 소위 대표 10명 전원이 참석하고 있다. 대화 내용은 일일이 속기록으로 작성하기로 했다.

양보를 허용치 않겠다는 의사들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정부대표단은 걱정한다. 정부측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무슨 대화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금 분위기로는 협상은 휴회와 결렬이 반복되고 병의원이 또 문을 닫을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남북대화 여야대화보다 더 어려운 게 의정대화가 아닌가 싶다.

의료계의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의약분업 실시 이후 의사들이 느끼는 억울함과 좌절감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의료계는 집행부 스스로 지나치게 내부 목소리에 민감해 언로(言路)가 꽉 막혀 있다는 지적을 먼저 곱씹었으면 한다. 서울경찰청장은 전공의들의 연세대 집회 충돌과 관련해 이미 유감 표명을 했다. 그런 마당에 다시 협상장에 나타나 직접 의료계 대표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를 하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닐까.

전공의에 의해 주도되는 듯한 대표단의 의사결정 구조를 탈피하고 협상팀도 3, 4명으로 재구성, 이들이 전권을 위임받아 큰 가닥을 잡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의정대화요? 하든지 말든지…. 이젠 신물이 나요.” 빈정거리는 국민의 목소리를 정부는 물론 의료계도 귀담아 들을 때다. ‘싸움’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이자 무기는 국민의 지지다. 명분도 실리도 국민이 준다는 점을 되새겨 하루속히 협상의 결실을 이루기 바란다.

정용관<이슈부>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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