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주실업 퇴출의 의미

  • 입력 2000년 9월 25일 18시 50분


서울은행 등 채권단이 미주실업에 대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중단키로 결정한 것은 본격적인 부실기업 정리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미주실업에 대한 채권단의 결정이 나오기 하루 전날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과감히 정리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미주실업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바로 이 회사의 회장인 박상희(朴相熙)씨가 집권당인 민주당 전국구 현직의원에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주실업은 부실기업 정리에 대한 정부의 투명성과 의지를 가늠할 시금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채권단의 실사의뢰를 받은 한국신용평가는 미주실업을 계속 돌리거나 신규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청산할 때의 이익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기업이 지금까지 은행의 수혈을 받으며 연명한 것은 기업 자체의 실력보다는 회장의 정치력에 의지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20% 정도가 영업이익으로 각종 대출금 이자를 꾸려나가지 못하는 한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부실화는 곧 기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진다.

금융구조조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경영 정상화가 불가능한 한계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해야만 금융시장이 조기에 안정되고 자금이 건전한 기업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

주채권은행인 서울은행이 자금지원을 중단함에 따라 미주실업은 법정관리 또는 청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정관리 또는 청산절차에 들어가는 기업들이 늘어날수록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의 부실채권도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드러난 워크아웃 기업주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사례는 부지기수였고 미주실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유한책임인 주식회사 제도에서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기업주에게 개인적인 민형사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적인 경영풍토에서 기업 재산과 개인 재산의 경계가 모호한 기업들이 많아 워크아웃으로 연명하는 기업의 사주들이 회사 돈을 개인적으로 빼돌리는 행위가 적지 않았다.

워크아웃 기업주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범법행위가 드러나면 그에 따르는 민형사 책임을 엄격하게 추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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