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경희/노약자 보호석의 현실과 이상

  • 입력 2000년 9월 18일 18시 40분


지하철에서 노약자보호석에 앉았다가 노인의 꾸지람을 들은 중학생이 노인을 계단에서 떠밀어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두가지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노약자석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점이다. 노약자석은 노약자들을 위해 비워놓게 돼있지만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다고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을 따끔하게 혼내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 이를 지키도록 하기 위한 계도나 규제도 없는 실정이다. 결국 노약자석은 말뿐이고 실제로는 아무나 앉는 좌석으로 변질됐다.

이런 현상을 겉으로만 보면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서있기도 어려운 것이 지하철 사정이다. 이런 마당에 노약자석을 비워둘 리가 없다.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나무랄 겨를도 없을뿐더러 나무랄 성질의 일도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지하철이 혼잡하지 않은 경우 노약자가 없어도 자리를 비워둬야 하느냐, 아니면 앉았다가 노약자가 타면 양보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노약자석을 둘러싼 갈등과 도덕적 혼돈은 주로 여기서 일어난다. 노약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비워둬야 할 자리인데도 젊은이들이 앉아 있으니 언짢아하고, 젊은이들은 노약자가 없는데도 좌석을 비워둘 필요가 있느냐고 편의주의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노약자가 있는데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경우는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노약자석은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비워두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로 몇 사람이나 노약자석을 비워두고 서있을까. 이번 사건은 노약자석의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외면한 채 구호만 붙여 놓은 지하철공사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현실적이고 지켜질 수 있는 제도로 바뀌어야 할 일이다.

둘째는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이에 대한 훈계의 문제다. 노약자석을 둘러싸고 젊은이와 노인이 다투는 것을 가끔 목격할 수 있다. 그 다툼의 대부분은 노인이 젊은이를 꾸짖는 경우에 일어난다. 그런데 이 꾸지람이 다소 지나치거나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어른이 꾸짖으면 젊은이는 잘했건 잘못했건 참고 들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꾸지람을 잘 참지 못한다. 그런 젊은이들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꾸지람의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꾸짖어도 통했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는다. 자기 자식을 꾸짖는 경우에도 그렇지만 특히 남의 자식을 꾸짖는 경우라면 설득과 대화로 스스로 잘못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방치해 생긴 불행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지하철공사는 시민의 중지를 모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또 가정과 학교는 민주적 토론방식으로 자녀와 학생들의 예절교육을 강화하고, 어른은 아량과 인내심을 갖고 젊은이들을 대화로 설득할 때 밝고 건강한 시민사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남경희<서울교대 교수·사회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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