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Out]이 땅에서 개그맨으로 산다는 것

  • 입력 2000년 9월 13일 16시 47분


한국에서 개그맨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케이블 TV, 인터넷 방송 등 매체의 증가와 오락 프로그램의 폭주 속에서 오히려 개그맨들은 상대적으로 설자리를 잃어 가는 듯 보인다.

"잘 나가는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진행이나 코너 진행자들, 시트콤의 감초 역할들이 모두 개그맨인데 무슨 소리냐"며 의아해 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코미디'라는 것이 역발상에 의한 웃음, 또는 일상 생활의 공감 가는 기쁨과 슬픔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개그맨들은 순발력 있는 말솜씨로 순간적인 웃음만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전성기의 코미디를 잠시 기억해보자. 영구 심형래가 만들어냈던 순수한 웃음, 최양락의 구수하면서도 얄미운 웃음, 김형곤의 가슴 후련한 풍자정신, 김미화의 동네 아줌마 같은 친근한 웃음 등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그 속에는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이 꽁트라는 극을 통해 표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유행도 변하면서 정통 코미디는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고 개그맨들은 '연기자'에서 '진행자'로의 변신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개그맨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든 또 다른 이유는, 개그맨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포장(making)'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똑같은 재능을 타고났다고 하라도 가수의 경우 좋은 노래와 안무로, 탤런트의 경우 훌륭한 작가와 좋은 배역을 만나 스타로 만들어지는 반면 개그맨들은 오로지 그들만의 힘으로 일어서야 하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짜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방송현실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가장 가슴 뿌듯했던 일은 관객들이 가수들의 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었던 '00오빠 사랑해요' 같은 플래카드를 흔들어 줄 때였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최초였고, 그만큼 개그맨들을 포장하기란 힘들며 또 그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금도 개그맨들이 떠나고 있다. 잘 나가는 스타 MC로, 또 시트콤 연기자로…. 그러나 언젠가는 뛰어난 재능과 아이디어를 겸비한 새로운 세대의 개그맨들이 그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에서 지금과는 다른 웃음을 보여주며 코미디의 깊이를 확장시켜 줄 것을 기다린다.

박중민 (KBS <개그콘서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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