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박승관/'한빛銀의혹' 끈질긴 추적 돋보여

  • 입력 2000년 9월 8일 18시 33분


우리 사회처럼 시끄럽고 말이 많은 곳도 없다. 각종 의혹과 설(說)과 소문들이 끊일 사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말’과 ‘설’은 난무하지만, 진지하고 차분하게 근본을 캐묻는 이성적 토론은 극도로 빈곤하다. 한국사회에는 시끄러움은 있되 목소리는 없다. 그곳은 ‘소음’과 ‘침묵’이 공존하는 분열적인 사회이다.

가령 한국사회에는 의혹사건이 끊일 날이 없다. 그러나 그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일 또한 드물다. 의혹사건들은 언제나 더 많은 의혹만 남기고 자취를 감춘다. 그 순간 요란하던 ‘설’들은 종적 없이 사라지고, 침묵과 고요만 남는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역설이다. 요컨대 우리사회의 그 많은 문제들은 좀처럼 쟁점화하기도 어렵고 철저하게 구명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우리사회의 숨은 문제들을 끊임없이 쟁점화하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전통적 강점을 지켜오고 있다.

가령, 동아일보는 이번 주의 핵심 사안이라 할 수 있는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에 관하여 연일 새로운 의혹들을 줄기차게 제기하고 쟁점화하였다. 심층취재와 인터뷰를 통하여 숨은 쟁점들을 계속 발굴해 내면서, 사건 관련자들의 주장을 입체적으로 대비하는 등 탐사보도를 추구하였다.

특히 이운영 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과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등의 주장을 쟁점별로 정밀 비교했으며, 이수길 한빛은행 부행장의 개입 사실을 밝혀냈다(4일자). 이운영 전 지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현룡 전 청와대 행정관의 대출 압력 행사 사실을 증언받았다(6일자). 이로써 동아일보는 자칫 의혹만 남긴 채 소멸해갈 수 있는 당대의 의혹사건을 지속적으로 쟁점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동아일보의 이러한 노력은 비단 정치적 의혹사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사회면 ‘집중추적―오늘의 이슈’란은 매일매일 다채로운 주요 사회 문제들을 발굴, 쟁점화하였다. ‘정부 비상진료체계가 가진 허점 분석’(2일자), ‘네오 싱글족’(4일자), ‘헌재 소장 내정자 월 3000만원 고문료 논란’(6일자)을 다룬 기사들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메트로 섹션’ 역시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연이어 쟁점화하고 있다. ‘청담동 도로 폐쇄 갈등’(5일자), ‘경인운하 착공문제’(6일자), ‘마곡지구 개발문제’(7일자)를 다룬 기사들이 흥미로웠다.

이와 함께 ‘실버 문화’(4일자)와 ‘e―주부’(6일자) 기사 등 일상적 생활영역에 널려 있는 삶의 주제들을 탐색, 보도하는 신선함을 보여주었다.

동아일보의 이러한 기사들은 새로운 탐사보도 장르로 볼 수 있다. 무거운 정치적 사안들 뿐만 아니라, 현대적 일상생활 속에 존재하는 가볍고 감성적인 주제까지 과감하게 발굴하여 집중 탐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동아일보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지나치게 도시 중산층의 생활방식에 편향되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박승관(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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