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풋볼경기장內 '집단기도' 논란

  • 입력 2000년 8월 31일 15시 29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

미국의 모든 지폐 뒷면에 인쇄돼 있는 이 문구는 미국이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임을 일깨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종교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고 있다.

미국의 종교별 신자 분포
(단위:%)
연도기독교가톨릭유대교기타무종교
198061 2822 7

1985

57 2824 9
199056 252611
1993 57 2618 8
1994 602426 8
1995 58252자료없음자료없음
1996 582535 9
1997 582626 8

그러나 미국에서 종교 문제가 일상 생활에서 화제에 오르거나 사회적 쟁점으로 공론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종교의 자유 못지 않게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탓에 자칫 논쟁의 소지가 있는 종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에서 요즘 '종교와 정치의 분리'와 고교 풋볼 경기장에서의 집단 기도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라는 예민한 논란을 촉발시킨 인물은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인 조셉 리버맨. 정통 유대교 신자인 그는 "유대교 안식일에는 유세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달 28일 시카고에서 열린 조찬기도모임에서 리버맨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인 국가이나 우리는 때로 이를 감추려 하고 있다"며 "미국인은 위대한 신의 자녀"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우리는 신과 신의 목적을 위해 국가와 우리 자신을 헌신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리버맨의 발언은 즉각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결성된 '비방반대연맹(ADL)'은 29일 리버맨에게 서한을 보내 "종교적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에서도 정치유세에서 종교를 강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불안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보수층에선 "만일 기독교를 신봉하는 정치인이 리버맨과 같은 발언을 했다면 종교와 정치의 명백한 분리를 요구하는 비판 여론이 거셌을 텐데 리버맨이 유대교 신자라는 이유로 이를 묵인하는 것은 명백히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엘레너 브라운 변호사는 30일 뉴욕 타임스지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종교 운동가들이 대체로 우익성향을 띠는 상황에서 진보성향의 리버맨 후보가 종교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종교적 좌파의 부활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에선 68년 흑인 인권운동의 기수였던 마틴 루터 킹목사가 암살된 이후 진보성향의 종교인들이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 많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30일 사설을 통해 "리버맨 후보의 발언이 종교를 믿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불러 일으켜서는 안될 것"이라며 "그가 종교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국가와 종교의 관계나 학교 기도 등의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보수적 기독교 전통이 강한 미 남부지역의 고교에서는 풋볼 경기 시작 전 학교 주도로 주기도문 낭독 등 집단 기도를 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최근 판결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 방식으로 계속 기도를 하고 있어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미 언론은 "자발적 기도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지만 교사나 기독교단체가 이를 조장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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