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남경현/물난리와 당국 팔짱

  • 입력 2000년 7월 24일 00시 09분


폭우가 쏟아진 22일 오후 5시50분경 경기 수원시 화서역 지하차도. 이곳이 물에 잠기자 소방서 직원들과 공무원들이 양수기를 이용해 물을 퍼내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다. 인근도로는 엉킨 차량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운전자 정모씨(45·화서동)는 “해마다 비만 오면 몇 차례씩 벌어지는 일”이라며 “도대체 당국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같은 날 오후 안양시 안양천 둔치 주차장. 이곳에 주차 돼있던 차량 150여대가 침수되고 10여대가 물에 휩쓸려 내려갔다.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한 주민은 “침수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예고는커녕 침수가 시작되고 나서도 차주나 운전자들에 대한 시의 신속한 연락이 전혀 없었다”고 안양시를 비난했다.

장마철이 별탈 없이 지났다고 해서 올해는 비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가 했더니 수마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경기북부에서 남부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는 깊고 넓었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통곡하고, 집이 파손된 주민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물난리를 막기 위해 경기도와 각 시군은 해마다 수해예방대책을 내놓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행정당국의 수해대비는 너무나 안이하고 허술했다.

용인 수지읍 상현택지지구에서는 산을 깎아내고 조성중인 아파트로 인해 주변 마을 20여채가 모두 침수됐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산사태가 나고 홍수가 진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학자와 전문가들도 이미 여러 차례 난개발에 따른 비피해를 예고하고 대책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

주민 신모씨(51)는 “이번에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피해였지만 행정당국의 안이하고 형식적인 대처가 이처럼 또다시 피해를 불러왔다”며 “치수(治水)는 국가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책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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