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지구촌 아이들은 전쟁중

  • 입력 2000년 7월 5일 18시 35분


최근 미국 난민위원회는 작년 한해 동안 35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외국으로 대피한 국제난민은 1400만명, 자국에서 탄압받는 내국난민은 2100만명이다.

난민위원회에 따르면 세계 난민의 절반은 아프리카 내전의 피해자들이다. 냉전 체제가 종식됐지만 아프리카는 물론 발칸반도에서 동티모르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서 각종 전쟁이 빈발하고 있다.

1990년 이후 발생한 인종적 또는 종교적 분쟁은 100건을 상회하며 500만명 이상이 살해되고 난민은 수천만명에 이른다.

이런 분쟁은 전쟁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고 있다. 피아(彼我)간에 선전포고를 하고 국제법을 준수하던 종전의 전쟁과 달리 근래의 전쟁은 한마디로 무질서 그 자체이다.

가령 민간인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거나 병원을 습격하기 일쑤이며 심지어 인도주의적인 지원활동을 하는 요원마저 인질로 붙잡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냉전시대 이후 무질서 상태에서 전개되는 각종 전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주력화기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탱크 대포 폭격기 대신에 작고 가벼운 병기로 전투가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권총 자동소총 카빈총처럼 작거나, 기관총 박격포 수류탄처럼 가벼운 무기가 대부분의 내전에서 인기를 끄는 이치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값이 싸고 구하기 쉬운데다 누구나 사용하기 쉽다. 화력 또한 만만치 않다. 한 사람이 소형 기관총으로 단시간에 수백명을 학살할 수 있다. 작고 가벼운 병기는 미국 독일 벨기에 이스라엘 등 서방국가와 러시아 중국이 주로 공급한다. 냉전체제의 붕괴로 남아도는 병기가 분쟁지역으로 수출돼 내전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어린이들이 전투요원으로 등장했다. 작고 가벼운 병기는 어린이들도 사용이 쉽기 때문에 약 30만명의 어린이가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18세 미만의 유소년이 정규군에 참여한 규모를 살펴보면 아프가니스탄 10만명, 미얀마 5만명, 수단 2만5000명, 르완다 2만명이다.

콜롬비아 라이베리아 우간다 앙골라 콩고 등 거의 모든 분쟁지역에서 아이들이 사람을 죽이면서 죽어가고 있다. 시에라리온의 반군은 80%가 7∼14세다. 우간다 정규군의 최연소 병사는 겨우 다섯살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민첩하고 죽더라도 어른이 전사할 때보다 군사적으로 손해가 크지 않다고 여겨져 소모품처럼 위험한 작전에 투입된다.

이를테면 척후나 지뢰 탐지를 도맡는다. 여자아이들은 요리사나 위안부 역할을 한다.

유소년 군인들은 강제 징집이나 조직적인 납치로 충당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제발로 걸어 들어간 경우가 많다. 오늘날 거의 모든 내전은 한 세대 이상 계속되고 있다.

전쟁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전쟁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더욱이 전쟁으로 부모가 살해되거나 집안이 거덜난 아이들에게 의식주를 해결하는 최선책은 입대이다.

따라서 분쟁지역의 10대들은 일찌감치 군인이 되는 것을 당연시한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군인으로 급조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중에 양 국가에서는 열살난 소년 수천명에게 순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 그들이 두려움 없이 싸움터에서 죽게 했다.

라이베리아와 캄보디아에서는 소년병에게 포로와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도록 명령했다. 우간다에서는 입대 직전에 반드시 고향에서 흉악한 행동을 저지르게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공포와 죄의식을 몰아내는 훈련을 받고 싸움터에서 살상과 폭력 앞에 노출된 5∼14세의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된 뒤에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전투요원의 나이에 제한을 가하는 국제적인 노력이 뒤따랐다. 1998년에 15세 미만의 어린이를 전쟁에 동원하는 행위를 전쟁범죄로 규정하는 국제법이 성안되었다.

선진국 아이들이 인터넷게임으로 전쟁을 즐기고 있는 동안 후진국 아이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지구촌 아이들은 전쟁중이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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