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타워]권순활/'황제경영'의 자업자득

  • 입력 2000년 6월 6일 18시 39분


재벌총수 수난의 시대다. 국내 재계를 대표했던 주요 기업인들이 줄줄이 ‘불명예퇴진’하고 있다.

최근 경영일선 퇴진을 선언한 뒤 칩거상태에 들어간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재계 1세대를 대표하는 재벌총수였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국내외를 누비던 김우중(金宇中)대우그룹 회장은 작년말 대우사태의 책임을 지고 ‘실패한 기업인’으로 물러나 해외를 전전하고 있다.

조중훈(趙重勳)한진그룹 회장은 잇따른 항공사고 후 작년 4월 경영에서 손을 뗐다. 또 장치혁(張致赫)고합 회장, 최원석(崔元碩)동아건설회장, 김중원(金重源)한일그룹회장, 김의철(金義徹)뉴코아회장이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으로 퇴진하는 등 현정부 출범후 물러난 총수만도 무려 10명에 가깝다.

1960년대 한국 경제개발이 본격화한 뒤 주요 기업인이 이처럼 단기간에 연쇄적으로, 그것도 대부분 타의에 의해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것은 전례가 없다.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물론 찾아보기 어렵다.

한시대를 호령하며 ‘황제경영’이란 말까지 낳았던 재벌총수들이 이처럼 비참한 처지에 빠진 것은 자업자득의 성격이 짙다. 경제의 글로벌화와 정보화의 확산으로 ‘시장이 말을 하는’ 시대상황에서 구태의연한 경영을 고집한 기업인일수록 추락이 심했다.

또하나 눈여겨볼 점은 현정부 출범직후 정권과의 밀월을 구가하던 대표적 재벌총수인 정주영 김우중씨의 퇴진에서 볼 수 있듯 정치권력과의 친소가 기업경영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점. 과거 정경유착이 가져다준 ‘과실’에 대한 환상으로 아직도 권력과의 접근에 목을 매는 기업인이 있다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권순활<경제부기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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