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Digital]동성동본 금혼등 사문화후 '공백' 방치

  • 입력 2000년 5월 31일 20시 17분


국회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민법의 일부 조항에 대한 대체 입법을 미루는 바람에 시민들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97년 이후 동성동본(同性同本)간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는 민법 제809조 1항과 친생부인의 소송에 관한 847조 1항, 상속재산 법정승인에 관한 1026조의 2항 등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들 조항의 적용중지 및 효력상실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이들 조항은 사문화(死文化)했으나 이 조항들을 대체할 새 조항이 만들어지지 않아 법의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동성동본 금혼의 경우 대법원이 호적 ▷예규(例規)를 제정해 동성동본간의 혼인신고를 받아주고 있어 실질적인 피해는 별로 없다. 그러나 ‘죽은 법’이 기본법인 민법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법조인들은 지적한다.

특히 친생부인의 소송에 관한 조항 등 다른 두 경우는 실질적인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친생부인의 소(訴)란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를 가려달라는 소송으로 민법 847조 1항은 해당 자식의 출생을 안 날로부터 ‘1년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속 법정승인제도는 부모가 타계한 뒤 자녀가 ‘3개월 이내’에 상속에 관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부모의 재산과 빚을 자동 승계하도록 한 제도. 부모가 남긴 빚이 재산보다 많을 경우 자녀는 빚 더미에 오를 수도 있다. 헌재는 이들 조항의 기간(1년내와 3개월내)이 너무 짧다며 97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 이들 조항이 개정되지 않아 친생부인과 법정승인에 관한 근거가 없어지게 됐다. 예컨대 부모가 타계한지 4개월이 지나 상속의사표시를 한 경우, 또는 자식의 출생을 안 날로부터 1년 6개월만에 친생부인 소송을 낸 경우 법원은 어떻게 판결해야 할지 근거가 없다. 법원 관계자는 “이에 관련된 사건의 재판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15대 국회가 정쟁으로 날을 보내면서 이들 법률의 개정작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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