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그림읽기]강세황 '자화상'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강세황 ‘자화상’

강세황의 ‘자화상’을 보고 있노라면 시나브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근엄한 표정의 선비를 보고 왜 웃는지 궁금하면, 잠깐 또 다른 그의 초상부터 살펴보자. 작가 미상의 ‘강세황상’은 머리에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상반신에 흉배 붙인 단령(團領)을 입고 각대(角帶)를 둘렀으니, 바로 예를 갖춘 조선의 관복이다. 그런데 ‘자화상’에서는 평복 두루마기에 오사모만 덜렁 썼으니, 이건 신사복에 운동모자를 쓴 것과 정반대지만 우습기는 매한가지다. 정조때 예술계를 주름잡은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 강세황, 저 유명한 김홍도의 스승이라는 분이 왜 이런 장난을 치셨을까?

‘자화상’ 머리의 좌우 여백에 빼곡이 쓴 찬문(贊文)은 강세황 자신의 글씨인데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 사람이 누구인고? 수염과 눈썹이 새하얀데/머리에는 사모 쓰고 몸엔 평복을 걸쳤구나/오라, 마음은 시골에 가 있으되 이름이 벼슬아치 명부에 걸린 게라/가슴엔 수 천 권 책을 읽은 학문 품었고, 감춘 손엔 태산을 뒤흔들 서예 솜씨 들었건만/사람들이 어찌 알리오, 내 재미 삼아 한번 그려봤을 뿐/노인네 나이 일흔이요, 노인네 호(號)는 노죽(露竹)인데/자기 초상 제가 그리고 그 찬문도 제 지었으니/이 해는 임인년이라.”

알고 보니 찬문에도 장난 꽃이 가득 피었다. 강세황, 이 분은 3남6녀 남매 중에 부친이 64 세에 얻은 막내로서 갖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늦동이였다. 그래서 유달리 밝고 해학적인 성품을 지녔으니 제자 김홍도 역시 농담에 능했고 음악부터 시문서화(詩文書畵)에 이르는 여러 교양을 섭렵한 것이 모두 그 스승으로부터 온 내력이다. 강세황은 다른 글에서 자신을 이렇게 평했다. “체격이 단소하고 인물도 없어서 잠깐 만나본 이들은 그 속에 탁월한 학식과 기특한 견해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는 자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싱긋이 웃어넘길 따름이었다.”

이 글을 아울러 생각해 보면 강세황의 우스꽝스런 복장에 걸맞지 않는 짐짓 심각한 표정이 그저 우스개만은 아닌 성싶다. 특히 옷주름 선이 다른 초상에 비해 좀더 굵어 굳센 느낌이 있고, 어깨 윤곽선 아래며 옷주름 근처에 진한 바림을 더해서 견실한 양감을 강조한 점이 그러하다. 얼굴 묘사는 섬세 정교하며 음영을 나타낸 입체감에 서양화법이 내비친다. 주인공은 고운 옥색 두루마기에 진홍색 세조대(細條帶)를 느슨하게 묶어 낙낙하게 드리웠다. 오사모의 검정색과 더불어 품위 있는 색감 연출이다. 뛰어난 자화상 솜씨에 유려한 글씨며 문장력까지 보여주었으니 가히 삼절(三絶)의 저력이 드러난 걸작이라 하겠다.

오주석(중앙대 겸임교수)josoh@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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