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그림읽기]김명국의 '달마상'

  • 입력 2000년 5월 9일 19시 38분


억센 매부리코에 부리부리한 눈, 풍성한 눈썹과 콧수염, 그리고 한일(一)자로 꽉 다문 입. 화가는 턱선 따라 억세게 뻗쳐나간 구레나룻을 마치 달아오른 장단에 신들린 고수(鼓手)처럼, 점점 길게 점점 더 여리게 연속적으로 퉁겨내듯 그렸다. 옷 부분은 진한 먹물을 붓에 듬뿍 먹여 더 굵고 빠른 선으로 호방하게 쳤다. 꾹 눌러 홱 잡아채는가 하면 그대로 날렵하게 삐쳐내고 느닷없이 벼락같이 꺾어내서는 이리 찍고 저리 뽑아냈다. 열 번 남짓 질풍처럼 여기저기 붓대를 휘갈기자 달마의 몸이 화면 위로 솟아올랐다. 두 손은 마주잡고 가슴 앞에 모았다. 윗몸만 그려졌지만 분명 앞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고 있다.

지그시 화면을 바라본다. 구레나룻 오른편 끝이 두포(頭布)의 굵은 획과 마주친 지점에 먹물이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슬쩍 붓을 대어 위로 스쳐준다. 훨씬 좋아졌다. 다시 구레나룻 아래 목부분에 날카롭게 붓을 세워 가는 주름을 세 줄 그려 넣었다. 이제 달마의 얼굴과 몸은 하나가 되었다.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그림 속의 필선(筆線)은 각각 서로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가? 선과 선 사이로 하나의 매서운 기운이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이른바 획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는 ‘필단의연(筆斷意連)’ 그것이다. 이 호쾌한 선들을 관통하는 기(氣)의 주인은 김명국인가, 달마인가?

달마는 인도 스님이다. 석가모니가 꽃 한송이를 들어 올렸을 때 스승 뒷편에서 조용한 미소로 답하여 그 심법(心法)을 전수받았다는 가섭 이래 제28대 조사(祖師)다.

그는 중국에 와서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을 최초로 펼친 중국선(中國禪)의 제1대 조사가 되었다. 그러므로 달마는 선(禪)의 대명사다. 그는 9년 동안이나 벽을 마주하고 수련했다고 전해진다. 달마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던 진정한 대장부였다. 그 무서운 집중력은 어떠한 원력(願力)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그토록 용맹 정진할 수 있었던 심지(心地)는 대체 어떠한 것이었을까?

‘달마상’을 보면 달마를 알 수 있다. 거침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본질이 아닌, 온갖 부차적인 껍데기들은 모조리 떨어 낸 순수 형상이다. 그러므로 몇 줄의 짙고 옅은 먹선으로부터 강력한 의지와 고매한 기상이 곧바로 터져 나온다. 아무도 곁눈질할 수 없게 하는 이 맹렬함, 이것은 바로 선(禪)이 아닌가? 그러나 저 눈빛을 보라. 달마는 한편 이 모두가 허상이라는듯 진정 거짓말처럼 깊고 고요한 눈매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아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달마상’도 결국은 달마가 아니다. 그냥 약동하는 선일 뿐이다.

오주석<중앙대 겸임교수>josoh@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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