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이슈분석]외환정책놓고 재경부-한은 견해차

  • 입력 2000년 5월 3일 11시 34분


최근들어 외환당국의 직간접적인 시장개입이 지속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폭이 당초 예상보다 축소될 것이고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자금 유입도 주춤거리는 상황에서 원화가 추가절상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빈번한 개입의 배경이다.

겉으로는 한국은행과 재경부 공히 일치된 입장을 피력하며 원화절상을 막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외환정책에 있어 외환당국내 내부갈등이 만만치 않다.

특히 한은과 재경부 두 기관의 특성상 상호 배치되는 견해가 상당하다. 이중 몇가지를 짚어본다.

▲환율방향 : 한은은 원화절상압력 수용, 재경부는 반대

한은과 재경부 공히 무역수지 흑자기조가 흔들리고 외국인의 주식순매수행진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 시점에서 원화추가절상이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특히 재경부는 IMF위기가 무역수지 적자추세속에 고평가된 원화환율에 기인했던 만큼 무리수를 써서라도 원화추가절상 압력을 막으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물가안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한국은행은 금리인상을 자유롭게 결정할수 없는 한 인플레이션 억제책으로라도 어느정도의 환율하락을 용인하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또한 재경부는 환율하락 방어수단의 일환으로써 일시적이나마 급등세를 유발시켜 원화절상속도를 늦춰야한다는 전술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한은은 시장이 자율등락 기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인위적인 환율급등 유도에 반대하고 있다.

▲변동성: 한은은 변동성 확대, 재경부는 환율고정에 초점

한은은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換변동성을 좁히는 정책은 시장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으로써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자율적인 거래로 어느정도 등락이 가능한 시장이 형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일중 변동폭이 기준율의 2%(20∼30원)정도가 되면서 장중 수시 등락이 이뤄지는 정도를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자유변동제의 취지나 외국통화의 움직임에 비춰봐도 등락폭이 일정수준으로 확대돼야 하며 그래야만 외환정책에 있어서도 유연성을 확보할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경부는 환변동성 확대가 무역업체들에게 환리스크를 떠안김과 동시에 국가경제지표를 흔들리게 만들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환율이 고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외환시장이 수출입에 따른 환전수요를 처리하기 위한 곳이지 외환딜러들의 투기의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환율지표가 흔들릴 경우 경제지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책목표 수립과 달성에 애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지나친 변동성 축소는 시장뿐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이롭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일례로 환변동폭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환리스크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지자 기업체들이 또다시 외화차입으로 수입결제자금을 메꾸는 등 단기외채를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입: 한은은 거시적 접근, 재경부는 미시적 통제

한국은행은 변동폭이 어느정도 확대되면 시장이 자율조정능력을 갖출수 있다고 보고 일정한 목표환율대(50원∼100원)를 설정한 뒤 환율이 절대 용인할수 없는 선을 벗어날 경우에 한해 강력한 개입을 단행하자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재경부는 시장 자율성 회복 자체가 투기화되는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시장을 확실히 지배해야 한다는 의사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한은이 시장개입에 있어 다소 신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게된 것은 현재 총외환보유액(가용외환보유액+시중은행 예탁금)이 1천억달러를 넘어선 상태에서 재경부의 개입지시가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한은의 직접개입은 본원통화를 방출하게 되는데 물가안정의 책임을 지는 한은은 다시 RP나 통안채를 발행해 풀린 통화를 흡수해야하는 입장이다.

재경부는 국책은행과 공기업, 그리고 자산관리공사나 예금보험공사를 동원해 수시로 시장에 간여하고 있으며 외평채발행을 통해 독자적인 개입에 나서고 있으나 특별히 책임을 질만한 부담감은 없는 상태이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외국환거래규정 2-17조에 '재경부장관이 필요한 (개입)지시를 할수 있다'는 독소조항 때문에 한은이 일방적으로 (재경부에) 휘둘리고 있다"면서 "(한은) 금융시장국은 개입에 따라 방출되고 있는 통화를 환수하는 일 하나만으로도 이미 부하가 걸려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해외투자공사 설립: 한은 반대, 재경부 밀어붙이기

개입지시권을 갖고 있는 재경부도 외환보유액이 1천억달러를 돌파한 상태에서 지속적인 개입으로 매15일마다 공식 발표되는 외환보유액의 급증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또한 2%(통안채발행금리-외환보유액 운용수익)에 달하는 외환보유액 유지비용 부담을 느끼면서 수익성 제고 필요성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면서 싱가폴 투자청(GIC ; Government of Singapore Investment Corp.)을 본딴 해외투자공사(또는 해외투자청, 가칭 KIC)를 설립해 공식적인 외환보유액 증가부담을 해소하고 외환관리에 있어 명실상부한 실권을 장악하면서 조직신설에 따른 인사적체 해소까지 노리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다른 나라에도 있는 좋은 제도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면서 "KIC설립에 대해 논란은 없으며 설립 시기만이 문제가 될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완강한 반대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외환보유액이 부담되는 수준이 아닐뿐더러 굳이 해외투자청을 만들어 외환보유고 관리를 이중적으로 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다.

더욱이 본원통화를 찍어낸 대가인 외환보유액에 대한 운용은 전적으로 한은 소관이라는데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외평채발행을 통해 흡수한 달러를 KIC로 빼돌려 따로 운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하지는 않으나 재경부 소관이므로 반대할 방법은 없다"면서 "그러나 한은이 통화방출을 통해 이뤄놓은 외환보유액은 전적으로 한은이 담당할 일"이라고 말했다.

외환보유액 운용·관리에 대한 두기관의 헤게모니 싸움은 한은이 지난 4월초 외화자금실을 외화자금국으로 격상시키려했던 시도가 재경부의 압력에 막혀 금통위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못했던 일에서 이미 겉으로 드러났다.

▲투명성: 한은 투명성 유지, 재경부 불투명성으로 회귀

IMF이후 당국이 집계하고 있는 많은 지표들이 제때에 투명하게 발표되어 왔으나 재경부는 국가이익을 위해 너무 투명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나라처럼 모든 지표를 낱낱히 그것도 신속하게 공개하지는 않는다"면서 "IMF와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그래왔으나 너무 투명한 것은 국익을 저해하는 요인이며 앞으로 자주권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은 관계자는 "굳이 2년간 정착시켜왔던 투명성을 다시 흐리게 하겠다는 발상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정책목표나 수단을 위해 투명성을 건드리는 것은 또다시 신뢰문제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고 말했다.

홍재문<동아닷컴기자>jm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