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변협 SOFA개정 공청회/작년 美軍범죄 3.5%만 재판권행사

  • 입력 2000년 4월 17일 20시 26분


국민 중에는 ‘소파’ 하면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보다 ‘거실의 소파(sofa)’를 떠올리는 사람이 훨씬 많다. 미군 병사가 기지촌 여성을 살해하면 그 때마다 세상은 ‘불평등한 SOFA가 미군 범죄를 부추긴다’며 시끄럽지만 잠시 지나면 곧 잠잠해진다. SOFA는 전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미국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한국민에게는 불리한 불평등협정이지만 그동안 정부는 몇십년간 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가 최근에야 개정 협상에 나서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1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SOFA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한미관계가 동반자적인 관계로 재정립돼야 SOFA문제가 풀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주권 위의 SOFA▼

지난해 한국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미군의 수는 956명. 이중 우리 경찰과 검찰에 수사받고 법원에서 재판받은 미군은 겨우 34명(3.5%)에 불과했다. SOFA에 따르면 미국측의 요청이 있으면 한국측은 재판권을 포기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군측은 단순 폭행사건이나 교통사고를 제외하면 한국측의 재판권 행사율은 전체의 20% 정도에 이른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권원칙에 반하는 SOFA 규정은 단지 재판권 관할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2월 서울 이태원 외국인술집 여종업원 살해사건의 범인인 미군 상병은 한국 경찰서에서 조사받은 뒤 잠은 미군 영내에서 잤다. 미군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최종판결을 받은 뒤에야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살인 같은 강력사건에서조차 구속수사를 할 수 없는 것.

미군 피고인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으면 우리 검찰은 항소도 할 수 없다. 항소권은 미군 피고인에게만 주어져 있다. 검찰이 독자적 항소권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길이 원천봉쇄돼 있는 것.

대한변협 인권위원 박찬운변호사는 “이같은 SOFA체제는 피해자인 우리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완전한 불평등협정”이라며 “헌법상 보장된 법정진술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고 있어 위헌의 소지가 많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인 인식전환 필요▼

서울 용산구청은 최근 미군 소속차량의 불법 주정차 과태료 상습체납 문제로 미군측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군측은 SOFA 제14조 ‘미 합중국 군대 구성원 및 군속의 재산에 대해 각종 조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조항을 들어 과태료를 낼 수 없다는 입장. 그러나 구청측은 과태료는 조세가 아니라 법규 위반에 대한 행정조치라고 반박한다.

경기 의정부시와 강원 춘천 원주시도 “상하수도 요금을 최저 수준으로 해달라”는 미군측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다.

미군측의 이같은 무리한 요구에는 “우리가 너희 나라를 도와주고 있지 있느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설명.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이장희교수는 “미군기지 사용의 근본적 해결은 ‘소유권’ 개념에서 ‘사용권’ 개념으로 실질적 전환을 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시(戰時)상태를 전제로 한 특수관계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원조하는 시혜적 관계도 아닌 평등한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돼야 한다는 것.

▼바람직한 해결책▼

이교수는 “SOFA 합의의사록 부속문서는 동반자적인 관계정립을 저해하는 만큼 북대서양조약기구(NAT0)수준으로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의자 신병 인도시기를 공소제기 직후로 개정하고 미군 가족의 범죄도 한국의 재판관할권에 포함되도록 바꿔야 한다는 것.

장주영변호사는 “전적으로 미군의 공무집행으로 생긴 법률상 손해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25%를 분담하도록 한 규정 등은 삭제돼야 한다”며 민사청구권의 전면개정을 요구했다.

장변호사는 또 미군의 모든 차량에 대해 보험을 들도록 규정해 억울한 교통사고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불평등한 SOFA개정국민행동’의 최종수집행위원장은 “SOFA는 ‘임대계약 체결과 임대료 지불’이라는 관점에서 전면개정돼야 한다”며 “형사재판 관할문제만으로 개정논의를 축소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부형권·김승련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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