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조정옥/'20세기 미술사'

  • 입력 2000년 2월 11일 19시 55분


무채색의 겨울, 암울한 현실 속에서 눈동자를 활짝 열고 색들의 찬란한 환희에 취해 보고 싶다. 예술 가운데 회화만큼 우리 영혼에 즉각적인 충격과 진동을 일으키는 것도 드물다. ‘20세기 미술사’는 100여개 그림의 시각적 즐거움과 그림에 관한 사색의 즐거움을 준비해 놓고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흔히 추상화는 알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악보도 못 읽고 도레미조차 모르는 사람도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감동할 수 있듯이 인물이나 풍경 정물이 하나도 없고 원과 사각형만 그려진 추상화도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영혼 속으로 침투하여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책은 세잔 고갱 마티스 피카소 등의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를 거슬러 올라가며 추상화의 대부 칸딘스키에서부터 전후 추상표현주의와 기하학적 추상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추상미술의 흐름과 갈래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분석하고 해명한다.

화가들은 왜 자연적 대상들을 버렸을까? 자연을 버리고 그 대신 무엇을 취했는가? 빨강색? 흰색? 검정색? 원? 사각형?

이 책은 화가마다 달라지는 세계관 예술관 회화철학 색과 형태의 의미 사회적 배경과 화가들간의 주고받은 영향을 다채롭고 화려한 은유들을 통해 퀼트처럼 매끈하게 꿰맸다.

흰색 화면 위에 흰색 사각형을 그린 러시아 화가 말레비치는 자연의 모방은 도둑질과 같고 진정한 창조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는 보이는 세계를 초월해 순수성 보편성 무한한 우주공간 유토피아 그리고 명상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했다. 신으로부터 독립한 르네상스처럼 추상화가들은 자연으로부터 독립하여 인간을 회화의 중심에 놓고자 했다. 그러므로 회화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감성 본능 충동 제스처가 맘껏 춤추는 자유분방한 무대가 되었다.

존재의 외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적 본질을 탐구하고 거추장스러운 외형을 생략하고 단순화하는 추상미술은 매우 철학적이다. 늘 사각형의 집속에서 사각형 신문을 보는 우리는 이미 추상적 형태 속에 푹 파묻혀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빈 벽이 있다면 추상화 한 폭을 걸어보라.

조정옥 (철학박사·성균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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