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문화와 핸드폰

  • 입력 2000년 1월 12일 19시 02분


경제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문화계에서 느끼는 경기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다. 모처럼 르네상스기를 맞고 있는 영화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문화 장르들이 상업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출판 분야의 경우 소설과 같은 전통적인 인기품목까지 판매가 극도로 부진한 가운데 영세 서점들이 문을 닫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음반시장도 IMF체제 이전에 비해 판매고가 30∼40%나 줄어든 상태에서 좀처럼 해빙(解氷)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전부터 ‘가난한 예술’이었던 공연계가 겪는 어려움은 더욱 크다. 오죽하면 연극배우들이 자신들의 공연활동을 공공근로사업으로 인정해 정부에서 수당을 지급해 달라고 하소연하고 나섰을까.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전국 순회공연을 마련해 연극배우들을 지원한 사례를 들면서 말이다. 불황의 영향은 가장 먼저, 활황의 혜택은 맨 나중에 미치는 곳이 문화계다. 그러고 보면 아직 경기회복의 여파가 ‘윗목’까지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문화계의 최근 불황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이 내놓는 해석이 흥미롭다. 우리 문화의 주 소비층은 다름아닌 10대와 20대들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고 또 PC통신에 가입해 있다. 이들이 이런저런 통신요금으로 한 달에 지출하는 돈은 대략 4만∼5만원이나 된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거나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용돈으로는 꽤 부담스러운 액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입장에서는 ‘필수’에 해당하는 통신요금을 줄일 수는 없고 대신에 책을 산다든지 음반을 구매하는 등의 문화비 지출을 억제한다는 분석이다.

▷정보통신 시대는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지만 이같은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이미 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문화계로서는 한숨만 내쉬고 있을 때는 아니다. 10대, 20대를 상대로 한 종전의 마케팅 전략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령과 계층으로 대상을 넓혀야 한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 상품도 개발해 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신세대의 얄팍한 주머니에 매달려온 왜곡된 문화 유통구조에서 탈피해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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