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전갈' 알아보기

  • 입력 2000년 1월 10일 19시 48분


강가에 사나운 독침으로 유명한 전갈이 두리번거린다. 강을 건너기 위해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마침 헤엄칠 줄 아는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전갈이 개구리를 향해 애걸한다. “네 등위에 나를 태우고 강을 건너다주겠니?” 개구리는 딱 잘라 거절한다. “사나운 너는 날 찔러 죽이고 말걸.”

전갈이 달랜다. “절대 아니야. 널 찔러서 무슨 좋은 일이 있겠니? 그랬다간 둘다 빠져 죽고 말테니. 그리고 보상은 충분히 할게.” 개구리는 긴가민가 하면서도 전갈을 업고 강을 헤엄쳐 건너기 시작했다.

◆'독침'감춘 정치인 수두룩

강 복판에서 드디어 전갈이 개구리를 마구 찔러댔다. 개구리가 죽어가면서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소리쳤다. 그래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전갈의 대답.“내 천성이야. 할 수 없어.” 그리고 개구리와 전갈 둘 다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프랑수아 자콥의 생물학 에세이를 번역한 신간(新刊)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종(種)의 생물학적 특성을 얘기하는 이 대목에서 엉뚱하게도 우리 정치와 정치인 그리고 유권자를 연상하게 된다. 전갈에게 찔리고 그 독(毒)에 상할 줄 알면서도 결국 선거라는 강(江)을 등에 업어 건너다주는, 불쌍하고 딱한 개구리같은 유권자들. 선거때만 되면 엎드려 달래고 보상을 약속하는 전갈에게 또다시 속아 IMF난국 같은 데 함몰되고 마는 딱한 국민.

상상은 또 가지를 친다. 전갈의 생태와 특성이 여의도의 몇몇 분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무엇보다 “물에 빠지면 함께 죽으니 너 개구리를 안찔러 죽인다”는 식의 그럴 듯한 변설에 능하다. 유세장에서는 ‘찍어주면 뭔가 보상해 줄게’하는 약속도 잘한다. 그 뿐인가.

전갈은 따뜻한 지역의 바위 밑이나 틈바구니 또는 굴에 서식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난방온도나 둥근 돔지붕의 석조건축을 연상케 하지 않는가. 또 전갈이 낮에는 숨어 지내고 밤에 먹이 사냥을 하는 것 또한 어디서 많이 보던 습성이다. 해가 떠 있는 낮에는 놀고 쉬면서 철야 차수(次數)변경회의가 예사인 여의도의 그분들과 너무 닮은 꼴 아닌가. 마지막으로 전갈의 사나운 독침을 알아보려 해도 그것이 눈에 잘 띄는 몸통이 아니라 꼬리 끝에 감추어져 있어 쉽게 식별하기 어렵다. 여의도에서 역시 어떤 국회의원이 독침을 어디에 숨기고 있는지 겉으로는 알아보기는 무척 어렵다.

프랑수아 자콥은 전갈을 비난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전갈이 잠시나마 무슨 고귀한 생각을 하건, 결국 전갈의 행태는 내심과 무관하게 찌르느냐 마느냐 일뿐 다른 짓은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 역시 인간 수준에서, 인간의 방식대로,인간의 본성 속에 갇혀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종(種)의 본성은 마음을 고쳐 먹거나,남이 충고한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의 말이 맞다면 우리의 선택은 딱 한가지다. 인간중에도 전갈같은 종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전갈을 알아보고 감언이설에 속지 않으며, 다시는 전갈을 업고 헤엄치는 짓과 같은 어리석은 짓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된다. 국회 열리면 욕설과 드잡이질, 지역감정 조장이나 정쟁(政爭)에 앞장서는 전갈, 정치는 현실이고 돈이 많이 드느니 어쩌고 하면서 거금을 챙기는 전갈,그게 법망에 걸리면 온갖 수단으로 재판을 끌어서 다음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고 마는 전갈, 그런 구린내 나는 범법을 여야간 대타협을 위해 일거에 탕감하자고 하는 뻔뻔한 전갈. 그들을 의사당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길 뿐이다.

◆감언이설에 속지 말아야

4월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마다 전갈 퇴치의 기치를 내걸고 전갈을 알아보기 위한 정보들을 제시하고 있다. 경실련은 여야 지휘부가 공천단계에서부터 참고하라는 압력으로 ‘총선출마 부적격자 16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내가 왜 사갈시(蛇蝎視)되어야 하느냐’며 억울하다는 이도 적지 않고, 이름까지 찍어서 공표하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이런 ‘낙선운동’이 선거법 위반이다 아니다 하는 논란도 시끄럽다. 그러나 전갈을 알아보고 그들을 업지 말자는 정보제공은 합법이건 위법이건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적어도 유권자로서 ‘어리석은 개구리’가 되지 않는 길은 쉬워졌다.

<김충식기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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