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상철/탈북자의 고통 외면말라

  • 입력 2000년 1월 2일 23시 04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놀랍게도 작년 10월 하순 국빈 방문한 장쩌민 중국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때 탈북자 인권문제를 거론했다. 장쩌민 주석은 귀국 후 1주일 만에 엘리제궁으로 탈북자 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서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90%가 한국행 희망

장쩌민 주석의 방문 직전 프랑의 ARTE TV 방송은 중국 옌지(延吉)의 산중에서 체포와 강제송환의 공포 속에서 짐승처럼 숨어 사는 탈북자들의 참상을 방영해 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 취재에 동행했던 앙리 플라뇰 의원은 프랑스의회에서 탈북자를 강제송환하는 중국정부의 비인도성을 지적했다. 그리하여 탈북자의 인권문제가 프랑스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주석에게 거론할 의제에 탈북자 문제가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인이나 국제사회의 국경을 넘는 인권에 대한 관심을 새삼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 법에 의하면 탈북자 즉 북한이탈 주민은 모두 우리 국민이다. 정부는 마땅히 탈북자들을 국민으로서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외국공관을 경비하는 중국 경찰의 눈을 용케 피해 들어온 탈북자에게 패스포트를 발행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도와줄 방법이 없다”며 돌려 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옌볜자치주 일대에서 탈북자 21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탈북자의 90%가량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을 결심이다. 그들이 가고 싶은 나라는 한국이다.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나머지 10%도 대부분 북한에서 굶어죽는 가족 때문이다. 그들은 북한을 이탈한 것이며, 더 이상 북한이 그들의 나라가 아니다. 그들의 의사가 북한 공민의 지위를 포기하는 이상 국제법적으로도 이중국적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우받아야 옳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가 그들을 버린다면 그들은 나라 없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오직 생명을 부지하고 살기 위해 월경해온 탈북자들을 잡아다가 북한으로 넘겨주고 있다. 96년 봄 강제송환을 당했던 북한군 대위 출신 김성민씨는 “중국 변방지대 구류소의 사면 벽은 처형과 박해의 공포로 절규하는 탈북자들의 낙서와 혈서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노예처럼 짐승처럼 살거나, 숨어서 숨죽이고 살다가 언제고 붙들리면 사지로 도로 끌려가도록 놓아두는 것이라면 대한민국을 어떻게 나라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인들을 인정도 양심도 없는 무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탈북자 보호해주다가 북한정권 무너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들을 하던데 곤궁에 처한 동족에 대해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과정에서 혹 ‘반인류범죄집단’이 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사필귀정이라고 해야지, 어찌 우환거리라 하는가. 수많은 탈북자들이 밀려들어오면 살기가 나빠지지 않겠으냐고 내심 꺼리기도 하던데, 일시 좀 나눠먹고 산다고 해서 생활이 크게 나빠질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외국인 근로자만 15만명이 넘고 구직난이라고 하지만 3D 업종은 계속 구인난이다.

◆현실적 지원방법 찾아야

현실적으로 탈북자 대량입국 사태는 일어나기 어렵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여론과 자국내 양심세력의 각성으로 인해 탈북자 강제송환을 중지하게 되고 결국 국제법상 난민으로 보호하게 되더라도 그들을 대거 한국으로 이주하도록 허용할 공산은 적다. 어떤 경우거나 탈북자들을 지원 보호해줄 실현가능한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탈북자 보호가 아직 제도적으로 안되는 것은 중국정부가 반대하거나 북한정권이 방해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불쌍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내 국민을 반드시 보호하겠다는 뜻, 그리고 각자의 처소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정성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다.

김상철〈변호사·탈북난민보호 유엔청원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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