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종훈/경제 발목잡는 정쟁정치 가라

  • 입력 1999년 12월 7일 19시 48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겪은 나라 중에서 경기회복 조짐이 빨리 나타나고 있는 편이다. 이 회복의 불씨를 잘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정부가 IMF 체제를 마무리짓고 경제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시장의 동요를 겨우 방지함으로써 경제회복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다. 물론 엄청난 공적자금으로 부실대기업의 부채를 정리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총체적 위기라고 하는 IMF체제 2년 동안 기업의 자구노력과 국민의 고통분담 등으로 39억달러 외환보유고를 675억달러까지 늘림으로써 경제안정의 바탕을 다져가고 있다. 최근 국제금리와 환율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엔화의 초강세 속에서 일본 정부가 200조원에 달하는 과감한 ‘경제신생 대책’을 발표함으로써 수출증대를 크게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이 좋은 국제환경을 활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경기회복을 가로막고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아 답답하고 안타깝다. 정기국회는 임시국회와는 달리 나라 살림을 다루는 중요한 예산국회다. 이번에는 93조원에 달하는 2000년도 예산안뿐만 아니라 산적한 개혁입법과 서민생활 입법을 처리해야 하는 막중한 국회이다. 그러나 몇 달째 폭로전 고소고발 장외투쟁 등 이전투구식 정쟁을 일삼으며 예산안 처리 시한을 넘겼다.

최근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성장률이 높아지면서 국민경제가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착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으나 경제전체의 구조와 틀이 전부 회복된 것은 아니다. 경기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제조업보다는 비제조업이 번창하고 수출산업보다는 내수산업이 번창해 기업인보다는 극소수의 투기꾼들이 주식시장에서 떼돈을 번 결과에 의한 것이다.

정부는 경기회복을 위한 노력과 함께 종래의 성장중심 국민총생산(GNP) 체제를 발전중심 국내총생산(GDP) 체제로 바꾸는 경제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또 하드산업을 소프트산업으로 개선하는 산업구조개혁, 지배구조의 확대를 경영구조의 확대로 개선하는 기업구조개혁 등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강력히 밀고나가야 한다. 종래 땅과 돈과 사람이 지배했던 20세기 유형자산시대에서 이제는 지식과 정보와 기술이 지배하는 21세기 무형자산시대에 대비할 수 있는 국정의 기본적인 틀을 새로 짜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권은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2000년도 나라살림의 확실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대화로 개혁입법과 민생입법을 다듬어 21세기를 향한 개혁정책과 구조조정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국회가 정부를 철저히 따지고 그 책임을 묻는 성숙한 의회정치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정치개혁의 대상이 오히려 정치개혁의 주체가 됐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새로운 정치권을 형성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부터 정치개혁과 구조조정을 솔선수범하는 새로운 정치를 펴나가야 할 것이다. 정치가 이제는 경제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지렛대 역할을 함으로써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21세기의 지식기반사회를 건설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종훈<경실련 공동대표·중앙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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