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박주현/政爭기사 너무 키우지 말았으면

  • 입력 1999년 11월 28일 19시 56분


신문의 얼굴에 해당하는 종합면 5면 중 3,4개면이나 정치 기사에 할애하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정치권에서 나라살림에 관해 많은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5면을 다 할애해서라도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삶과는 관계없이 ‘그들만의 싸움’을 하고 있을 때는 아예 지면을 주지 말아야 한다. 기사 가치와 관계없이 무조건 일정 지면을 주게 되면 지엽적이거나 가십성 기사로 흐르게 마련이고, 선정적인 가십기사에 익숙해진 정치권은 더욱 더 화끈한 가십거리 만드는 데만 열중하게 되고 만다.

많은 독자들은 매일 되풀이되는 정쟁기사에 말할 수 없는 환멸을 느끼고 있다. 커다란 제목과 커다란 사진으로 현란한 정치면을 넘기다 보면 다음장에서 펼쳐지는 알찬 생활관련 소식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문제도 심각하다.

국민의 생활과 관계없는 여야간 정쟁에 관해서는 어떤 갈등이 생겼다는 점만 짧게 보도하고, 나머지 면에서는 국민의 입장에 선 비평기사로 정치권에 충고하고, 정치권이 놓치고 있는 나라살림을 직접 다루어서 정치권을 리드해야 한다. 이 점과 관련해 언론문건과 옷로비사건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이 과연 지면을 독차지할 만큼 국민의 이해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였던가 하는 점을 반성적으로 곱씹어보아야 한다.

오히려 문화면에서 비평을 담은 좋은 기사를 발견하였다. 22일자 문화면의 ‘국내 TV뉴스 속빈 강정’이라는 기사가 그것인데 국내방송뉴스와 영국의 BBC뉴스, 미국의 NBC뉴스를 비교분석한 한국언론연구원의 보고서를 인용했다. 국내 방송뉴스가 의제설정이 미흡하고 백화점식 나열보도에 그치고 있으며, 3사가 같이 보도한 뉴스가 절반 이상이 되는 등 독자적인 뉴스가 부족하고, 대안제시없이 결과 중심의 단편적 보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을 통계결과를 들어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는 국내방송의 국제뉴스가 볼거리나 흥미위주로 흘러 국제 정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하였는데 그 지적은 이번주 국제면에도 대체로 타당한 것 같다.

우선 내년에 있을 미국의 대선에 대한 기사가 매일같이 국제면의 중심기사가 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 내용도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의 선거운동 내용을 소개하는 것에 불과해 우리에게 뉴스가치가 별로 없었다. 특히 23일자 국제면에서는 ‘미공화 주지사 31명 부시 지지’라는 커다란 제목과 부시의 커다란 사진으로 인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는 기획기사 마지막회가 한쪽으로 밀려서 필자도 처음 신문을 훑어읽을 때는 그 기사를 간과하고 말았다. 우리에게 어떤 기사가 더 중요한 것인가.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사회면은 ‘사건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23일자 ‘대학 실험실 안전관리 낙제수준’ 기사와 24일자 ‘차 포장지에서 환경호르몬 검출’, 25일자 ‘공직사회 지속적 개혁이 급선무’, 26일자 ‘낙동강 물에서 병원성 바이러스 검출’ 기사는 사회면에서 보기 어려운 사회정책관련 기사로서 돋보였다.

사회정책은 정치나 경제정책보다도 더 어렵다. 선진국에서는 공무원의 절반 이상이 사회정책을 가지고 씨름한다. 경륜있고 능력있는 기자들이 사회정책 전문가가 되어 내실있는 사회면을 만들어가야 한다. 한동안 정치면의 시대였고 요즈음이 경제면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사회면의 시대가 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박주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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