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80)

  • 입력 1999년 11월 24일 18시 37분


그래 나중에 너는 불꽃이 되어 시멘트 포장된 공장 앞 네거리에서 사그라졌지만 네 마지막 편지는 남아 있다. 미경아, 이제 나는 먼 길을 돌아와 너에게 뒤늦은 대답을 할게.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하는 거 아닌가?

사람 사는 게 뭐니. 결국은 삶의 절반은 세 끼 밥 먹는데로부터 시작되었지. 정말로 손 쉬운 것이었어. 처음엔 다 같이 풀 치마를 입고 살았을 거야. 태양이 떠서 저물고 다시 뜰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아무 것도 하지않고 놀거나 아니면 사랑을 했겠지. 풀벌레들이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초저녁 무렵이면 그들은 눈을 맞추고 잠자리를 찾으러 갔어. 그리고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물가로 가서 조개를 줍고 숲으로 들어가 열매를 땄어. 하루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을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일로 허비했지. 남 녀 사이에도 극성스런 소유욕이 없을테니까 모든 아이들은 공동체가 함께 키우는 생명들이었을 거야. 저 원초의 바깥에서 악의 그림자가 시작되었다. 너른 지평선을 지나 삶의 조건이 나쁜 데로부터 혹독한 일상을 견딘 다른 공동체가 울타리 밖으로 나타나는 거야. 그리고 처음엔 교역으로 시작했지. 세상의 모든 악은 장사꾼에서 시작됐어. 날개 달린 뱀 처럼, 하지만 무서운 힘을 갖고 있는.

미경아, 예술과 혁명이 가는 길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렴. 처음 시작했던 삶으로 되돌리려는 안간힘이야. 지상에서 비롯된 새벽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지상에 세워진 한낮의 모든 허접쓰레기 같은 제도를 부숴버리는 일.

나는 다시 먹을 것으로 돌아가마. 아름다운 젊은이 예수가 처음에 출발했던 이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엇이었겠어? 땅에서 가장 소박하고 욕심없는 식사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상의 양식으로서. 죽음을 앞둔 그에게 최후의 만찬은 사실은 새로운 출발점이었던 거야. 죽음이 산 것들의 새로운 탄생이듯이. 그러면서 그는 작별을 고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지. 수많은 환쟁이들이 그의 마지막 밥상 모습을 수천 점이나 그렸단다. 굳은 흑빵과 막거른 거친 포도주가 전부인 식사.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미경아, 이 문디 가시나야, 입에 발린 루즈 같은 혓바닥위에 얹힌 말 재간이 아닌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닌 것같아. 글쎄 즈네들이 죽음이 갈라놓을 때 까지 간대. 웬만한 자극 가지고는 놀라지 않는 세월이니까 말들을 과격하게 해. 사랑은… 절반은 음식 같은 몸이고 절반의 절반은 숨결 같은 넋이고 나머지 절반은 주변의 이웃이 완성시켜 준단다. 그렇게 늙어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다들 절반에서 실패하고 그리고 노년은 쓸쓸한 각자의 고독이야. 절반의 절반까지만 가도 다행이고 거기서 못다한 건 후생에서나 다할까.

이제 다시금 먹는 이야기. 내가 아는 이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더라. 전쟁 끝난 직후에 여름 우박이 오고 날이 가물고 그래서 초겨울이 왔는데 식량이 떨어졌대. 온 식구가 방에 군불은 때고 누웠는데 밤에는 차라리 나은데 한낮에는 못견디겠더래. 갑자기 아버지가 비칠거리며 텃밭으로 나가더니 괭이로 땅을 파더래요. 개나 말이 배고프면 땅 파듯이. 그리곤 치명적으로 기운이 빠질텐데도 진땀을 흘리며 괭이질을 했다지 뭐야. 굶주림을 무엇으로 극복해, 세계에 물질이 생긴 이래로 모든 것을 이루어낸 노동으로 극복해야 해.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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