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경빈/'순국선열의 날'을 아는가

  • 입력 1999년 11월 16일 19시 58분


20세기 끝자락에서 지나간 한 세기를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사는 통한과 영광이 한데 뒤엉켰다. 금세기초 우리는 반만년 면면히 이어온 나라의 국권을 외세에 침탈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중반에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그러나 자주 독립의 의지로 이같은 국난을 극복하고 조국광복을 이룩했고 금세기말에는 세계 10대 강국에 드는 나라로 가꾸어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은 주변 강대국으로부터의 수많은 외침과 내란이 있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특히 국난의 고비마다 애국선열들이 민족의 제단에 한 몸을 바쳐 조국을 지켰다. 임진왜란 때는 절간의 승려들이 나서 승병을 조직했는가 하면 부녀자들조차 외침에 맞서 싸웠다. 일제 강점기에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싸운 수많은 애국선열들은 바로 이들의 후예인 셈이다.

17일은 금세기 마지막으로 맞는 ‘순국선열의 날’이다. 금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이 되는 해여서 어느 해보다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순국선열 추모행사는 60년전 임시정부 시절부터 시작됐다. 1932년 윤봉길의사 의거 이후 일제 탄압을 피해 피란길에 올랐던 임시정부는 1939년 의정원의 결의로 ‘순국선열공동기념일’을 제정해 순국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추모하기 시작했다. 당시 임시정부 의정원은 “순국선열을 기념할 필요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으나 다만 순국한 분들을 각각 기념하자면 지나치게 번거로울뿐더러 무명선열도 있으니 1년중 하루를 잡아 공동으로 기념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매년 11월17일을 순국선열기념일로 제정 발표했다.

당시 의정원에서 11월17일을 제정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가 망한 것으로 말하면 경술년 8월29일이나 합방 발표는 그 형태만 남았던 국가의 종국을 고하였을 뿐이요, 실지로는 을사년 5조약으로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 것이니 망국조약이 맺어진 11월17일을 순국선열기념일로 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6·25전쟁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이날 순국선열 추모제가 봉행됐다. 주로 유족단체 주관으로 치러지던 행사가 82년부터 각계 대표가 공동으로 참여해 명실공히 순국선열공동추모제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가에서 ‘순국선열의 날’을 정부기념일로 제정한 것은 2년전인 97년이다.

우리 사회에서 광복전 세대는 이미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광복 후에 태어난 세대는 민족사의 교훈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젊은 세대가 외국문화에 전면적으로 노출돼 있는 현실에서 우리민족의 역사나 정체성에 대한 교육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민족을 한덩어리로 묶을 수 있는 끈은 면면히 이어오는 공통된 역사와 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선 것은 바로 순국선열들의 투쟁사와 애국혼이다. 금세기 마지막 순국선열 추모제를 맞아 순국선열 제위의 제단에 추모의 향을 사르며 옷깃을 여민다.

윤경빈<광복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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