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영찬/멀고 먼 미사일主權

  • 입력 1999년 11월 16일 19시 14분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는 15일 한국외교협회 초청 연설에서 한미 과거사에 대해 “변함없는 친구와의 우정같은 것만은 아니었다”며 “한때는 제국주의자의 관점에서 한국을 대했고 치외법권과 불평등 조약을 요구했다”고 술회했다.

보스워스 대사의 말대로 양국 간 과거사에는 명(明)과 암(暗)이 엇갈렸다. 그리고 한미 행정협정, 한국 미사일개발, 주한미군 부지반환 문제 등 지금도 ‘암적(暗的)’요인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한국 미사일의 사거리(射距離)연장 문제를 보면 아직도 깊은 ‘그늘’이 느껴진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과의 약속에 따라 자체개발 미사일 사거리를 평양에도 못미치는 180㎞로 제한해왔다. 한국은 300㎞까지 개발을 원한다. 300㎞ 이상은 실험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측은 300㎞ 미사일 개발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개발과정의 ‘완벽한 투명성’을 요구한다. 또 300㎞ 이상에 대해서는 사실상 부정적이다.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을 전략적 목표로 삼는 미국의 입장에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미사일을 개발하려면 옷을 다 벗으라”는 식의 태도는 수긍하기 어렵다.

한미간에 미사일 문제를 다룰 때만 되면 미국 언론에 이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것도 뒷맛이 씁쓸한 현상이다. 뉴욕타임스는 18일부터 열리는 한미 미사일협상에 앞서 “한국이 장거리 미사일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다”고 보도했다. 7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미국방문 직전에도 뉴욕타임스는 한국 미사일을 부각시켰었다.

“미사일 개발은 주권사항”이라는 얘기는 적어도 지금 한미간에는 통하지 않는 얘기다. 그래서 “양국간의 영구적인 우정의 근간을 만들기 위해서…” 운운하는 보스워스 대사의 말이 현실과 동떨어진, 아주 먼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영찬〈정치부〉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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