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성기/학교는 무너지고 있는데…

  • 입력 1999년 10월 31일 19시 59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이가 가방을 메고 등교길에 나섭니다. 이때 어른들은 “그래, 잘 다녀와라”하고 응대합니다. 각별히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는 “쉬어 가면서 공부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할 겁니다. 우리네 학부모는 아침마다 ‘아이가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고 믿는 편이지요. 학교가 배움터이니 그게 당연한 생각이겠지만 실제 다수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딴 짓을 하거나 책상 위에 엎드려 잠만 자고 있다면 어찌하시렵니까.

▼촛사건뷰토 "쿨쿨"▼

‘열심히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소수의 아이들, 여기저기서 하품하는 소리, 첫시간부터 졸기 시작하는 아이들, 몰래 오가는 쪽지….’

현직 교사가 오늘의 학교 현실을 기록한 책자의 한 대목입니다. 초등학교 신입생 교실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아니라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나 선생이 지겹다’며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교사는 교사대로 ‘아이들이 무섭다’고 항변하지요. 이래저래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런 실상이 바깥 세상에 알려지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지요.

우리 학교 교육의 문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입시 위주의 교육이다, 주입식 교육이다 해서 누구나 한마디씩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육 당국도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을 강조하면서 교육개혁에 골몰하고 있지요. 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는 것도 그 때문이죠. 하지만 학교교육의 붕괴 현상은 입시제도를 바꾸고 교육비 예산을 증액한다고 해서 정상으로 복원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요즘 아이들이 학교 자체를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교육 동기상의 위기라고 할까요, 학교 교육에 영 재미를 못느끼고 있지요. 왜 굳이 학교에 가야 하는지, 왜 국어나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확인하지 못하고 학교 탈출을 꿈꾸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왜 공부 안하느냐’고 다그쳐봐야 공염불이기 십상이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성적 부진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학생들이 분명 줄어들 것이라는 거죠.

▼'호랑이선생님'옛말▼

저간에는 학교 교육이 우격다짐을 통해서라도 아이들을 장악했지만 이제는 그 힘마저 잃고 있지요. 어느 면 종이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기실 ‘호랑이 선생님’이란 표현도 이미 옛말이 되었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썰렁한’ 어른들을 상대하려고 안 합니다.

대신 소비대중문화가 내뿜는 현란한 빛을 부나비처럼 쫓아갑니다. 거기서 새로운 우상을 발견하고 충성하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 공허감은 그대로 누적되게 마련이지요. 따지고 보면 아이들도 매우 당혹스런 처지에 놓여있는 셈입니다.

학교의 붕괴는 어른들의 무능력을 반영합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기를 능력이 없다는 말도 되죠. 배움이 갖는 의미와 재미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일방적인 군대식 교육에 의존했는데, 지금은 아이들 편에서 먼저 거부하는 형국입니다. 다음 세대의 참교육을 등한시하고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강조한 우리 사회가 이제 그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지요.

21세기는 지식기반 사회라고 합니다. 지식과 정보가 삶의 질과 문화의 수준을 좌우하는 시대라는 거죠. 정부도 교육에 21세기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보기에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요. 한데 교육개혁의 중심이 대학에 쏠리다 보니 청소년 교육 현장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정작 지식기반 사회의 ‘기반’은 청소년 교육을 통해 다져지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지금 북녁의 아이들은 ‘영양실조 세대’라고 불립니다. 성장기에 집단적으로 겪은 영양실조는 남북 이질화를 촉진하는 변수가 되리라는 진단도 있지요. 지금 남녁의 아이들은 학교교육의 붕괴를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교육실조 세대’라고 부름직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미래는 있는가. 과연 새로운 교육의 활로가 열릴 터인가. 이 물음은 새 천년을 앞두고 어른들이 먼저 풀어내야 할 공적 의제가 아닐는지요.

김성기(현대사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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