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자의 길, 언론의 길

  • 입력 1999년 10월 28일 20시 12분


권력을 위한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현직 언론인, 그것도 젊은 기자에 의해 작성됐다는 사실은 새삼스레 우리로 하여금 기자의 길은 무엇이고 언론의 길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이는 비단 문건을 만든 당사자나 그가 소속된 언론사만을 겨냥한 물음이 아니다. 이 시대 전 언론인과 모든 언론사에 던지는 참담한 자괴(自愧)의 물음이요, 진솔한 자기 반성의 몸짓이다.

두말할 것 없이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하고 그 존재 의미는 불편부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에 의해서만 담보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언론을 회유하거나 제약하고 통제 혹은 탄압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언론자유는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투쟁의 산물이고 그런 만큼 자유에 따른 책임도 막중하다.

우리의 언론사는 멀리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가깝게는 군부독재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부당한 회유와 간섭, 탄압으로부터 언론자유의 외연을 넓혀 온 ‘투쟁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굴곡진 우리의 현대사에서 언론이 항상 정론(正論) 직필(直筆)의 길만을 걸어왔다고 할 수는 없다. 때로는 권력으로부터 곡필(曲筆)과 침묵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 본연의 사명과 의지마저 잃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론자유란 민주화와 함께 가는 시대적 소명이었다.

우리는 언론자유를 말하면서 항상 언론 외부, 즉 권력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젠 언론내부로도 눈을 돌려 보자. 언론인이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언론탄압의 길잡이 역할을 한 사례도 적지 않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또 국민의 알 권리란 공익(公益)보다는 언론사의 사익(社益)이나 기자의 사리(私利)에 매달려 권력과 정치권에 영합하고 야합한 경우는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아직도 권력이나 여든 야든 정치권과 내통하는 개인이나 조직이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뼈를 깎는 아픔으로 자성(自省)해야 한다.

자기 반성과 자기 정화를 게을리한다면 독자인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과 권력은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언론부터 자성과 자정을 통해 떳떳하고 당당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데서 권력에 ‘조종과 장악’의 구실을 주는 것이다.

권력 또한 회유와 공작으로 언론을 장악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민주화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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