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21세기용 국어사전

  • 입력 1999년 10월 7일 18시 41분


한 민족이 사용하는 말과 글의 보존과 발전이 그 민족의 독립 발전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은 역사가 말해 준다. 일제시대 한글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말과 글을 지킨 한(韓)민족은 독립 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던 반면 고유한 언어가 있었으나 그것을 지켜내지 못한 만저우(滿洲)족은 이제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말과 글을 중시하는 민족이 흥하고 그렇지 않은 민족이 쇠하는 이유는 언어가 해당 민족의 사상이나 감정, 물질생활이 투영(投影)된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결정체를 하나의 그릇에 담은 것을 사전이라고 볼 때 ‘좋은 사전 만들기’는 우리 민족이 융성하기 위한 열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금세기 마지막 한글날을 앞두고 국립국어연구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20세기 한민족이 21세기 후손에게 주는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표준어는 물론이고 북한어 방언 등 50여만 단어가 수록된 최대규모인데다 국가기관이 책임지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능적 측면에서도 이번 대사전은 맞춤법 표준어 외래어 표기법 등 현행 어문 규정대로 편찬돼 사전에 따라 달리 표기돼 적잖게 야기되던 혼란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 ‘발렌틴데이’ ‘발렌타인데이’ ‘밸런타인데이’과 같은 외래어를 ‘밸런타인데이’와 통일시킨 것은 불필요한 혼란을 막는 조치로 눈에 띈다. 요즘 청소년들이 자기 것이라고 말할 때 쓰는 ‘찜하다’도 신어(新語)로 들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문제는 112억원이나 들여 어렵게 만든 사전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중권과 하권이 나오는 11월쯤 사전편찬실이 해체되면 과연 원활한 수정 증보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는 CD롬 형태의 사전을 어떻게 만들지도 과제로 남는다. 지식과 정보가 다음 세기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 이번 대사전의 업적을 토대로 우리 말과 글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후속작업이 가능하도록 국가 사회적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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