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규덕/東티모르 파병 초당적 대처를

  • 입력 1999년 9월 27일 18시 44분


정부가 동티모르 파병 방침을 발표한 이후 전투병 파견을 놓고 찬반 양론이 뜨겁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파병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지만 인도네시아 한국교민사회가 전투병 파견 반대 결의문을 발표하면서 야당이 반대 쪽으로 기울었다. 야권에서는 전투병 파견 불가 입장을 밝혔고 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 차원에서 전투병 파견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약 1개 대대 420명의 파병을 앞두고 여야를 떠나 과연 국가이익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투병 파견에 반대하는 측은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자원과 시장, 2만명이 넘는 인도네시아 거주 교민과 400여 기업체의 안전,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낱 인구 60만의 조그만 도서 국가의 독립을 위해 한국이 지나치게 앞장 서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다. 물론 전통적 개념의 국가이익을 고려할 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큰 이익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맞아 외교정책이 과거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터키에 대지진이 났을 때 한국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7만 달러 수준의 구호금 액수를 발표하는 사이에 일본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상은 터키의 수도에 나타나 100만 달러의 긴급지원을 약속하는 장면이 CNN뉴스를 타고 전세계에 방영되었다. 세계는 일본의 인도주의에 대한 적극적 관심에 경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지원액수가 그만큼 퇴색될 수밖에 없었으며, 119 구조단 파견도 이미 시기적으로 늦어 그야말로 참가에 의의를 두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일본의 치밀한 외교는 군사대국화를 경계하는 세계 여론을 무마시키고 일본의 국제사회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제고시켰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광고효과를 본 것이다.

한국은 일본 외교에서 많은 점을 배워야 한다. 사건이 터진 후 48시간 이내에 일본 외상이 사고현장에 나타나 지원을 약속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책 결정의 통상적 과정을 고려할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판단과 신속한 집행, 그리고 인도주의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결국 21세기의 경쟁력을 판가름할 것이다. 그들의 속내가 어디에 있건 수많은 자연재해와 분쟁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주민들은 그들을 희망으로 바라볼 것이며,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외교정책은 시대의 특성과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단순한 손익계산보다는 포괄적인 이미지 홍보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또 해당 국가만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세계 시민사회의 반응을 폭넓게 고려하는 역동적인 외교를 구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동티모르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관심 표명과 파병 결정은 국제사회의 합의와 관심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이 효과적인 정책 수행으로 성공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국외교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입김에 영향받고 눈치를 보며 편승(便乘) 위주의 외교정책을 취해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파병결정이 21세기 한국 외교가 홀로서기를 하는 데 필요한 이미지 변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대승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보화시대에 걸맞은 신속한 결정과 효율적 임무 수행으로 세계인들에게 한국이 국제사회의 정의 실현에 높은 관심과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소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초당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유엔의 평화유지군만이 동티모르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으며 무고한 생명들을 폭력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 전투병 200명이 충돌 예방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면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다. 누구보다도 뼈아픈 식민지 체험을 갖고 있는 우리인 만큼 국민적 합의로 동티모르인들의 안전을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정책은 모양갖추기가 아닌 세계를 감동시키는 언행일치의 외교이다.

홍규덕<숙명여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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