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희/공정경쟁에 목마른 中企들

  • 입력 1999년 9월 21일 19시 25분


얼마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다국적기업 국내 최고경영자협회가 상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업무협정을 맺었다. 그 자리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바람직한 관계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날 새롭게 학인한 것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불리우는 다국적 기업들이 기업윤리를 철저히 준수하는 경영을 통해 오늘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한 의약품 다국적 기업의 본사는 한국 지사에 권한을 대폭 위임하고 있지만 고객관리에 대한 감독은 철두철미하다. 특히 협력 중소기업에 대한 관리가 아주 철저해 납품대금을 반드시 30일안에 결제해야 하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 담당자 문책이 따른다. 더 놀라운 것은 현지 사장이 거래 여행사조차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여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적어도 서너번 이상 시정을 요구한 뒤 본사에 사유를 상세히 보고해 승낙을 얻어야 여행사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물품을 납품한지 한두 달 후에 3,4개월짜리 어음을 받는 것은 보통이고6개월 이상의 어음을 받아도 불평 한마디 할 수 없는 한국 중소기업들로서는 참으로 놀랍고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대기업 구매담당자의 눈밖에 났다가는 부도의 공포 속에 내던져지는 한국 중소기업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선진국 중소기업에 대해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들은 협력 중소기업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협력 중소기업을 진정한 동반자로 그리고 소중한 고객으로 대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대기업도 세계적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으며 중소기업을 살리고 나라 경제도 살릴 수 있다.

한국에 지금까지 재벌이 지배하는 독과점시장은 있어도 선진국과 같은 진정한 자유경쟁 시장은 없었다. 그것이 재벌 문제의 근원이었다. 그것이 재벌의 경쟁력을 잃게 하고 중소기업의 존립기반을 약화시켰다.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경쟁을 통해 힘을 키울 수 있는 자유경쟁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현 정부 출범이후 대대적인 재벌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버티고 미루는 상황이 생겨 나고 있다. 이번 재벌개혁 조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돼야만 공정경쟁의 틀을 확립할 수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불공정한 거래행위가 지속되는 한 중소기업은 어떤 업종도 영위할 수 없다. 정부는 재벌이 핵심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나머지 업종은 과감하게 중소기업에게 이양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불공정행위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그 길만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한국 경제가 사는 길이다.

이번에 재벌개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대우사태가 잘 해결된다면 한국 재벌도 곧 초일류 전문 대기업으로 다시 태어나 중소기업과 균형을 이루며 한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 놓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를 위해 재벌은 전문대기업그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국민 모두가 바라는 재벌개혁의 목표일 것이다.

박상희(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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