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주석/'베를린 합의' 이후가 문제다

  • 입력 1999년 9월 14일 18시 38분


미국과 북한의 베를린 회담이 타결되어 북한 미사일 재발사를 둘러싼 위험한 상황이 한 고비를 넘겼다. 이 회담은 두 나라가 계속해온 고위급 회담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만 종전에 비해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발사 문제를 해결한다는 단기적 관심 외에 미북 관계의 진전과 북한 안보 현안의 해결이라는 장기적 구상과 연관하여 진행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베를린 합의는 만약 회담이 실패하고 미사일 재발사가 강행됐을 경우 나타날 파국적 상황을 방지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미국 일본의 공조에 의한 외교적 압력과 경제지원 중단 등이 자칫 ‘상승 작용’을 일으켜 북한의 추가 도발과 대북 제재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단 저지되었다는 점은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이번 회담의 타결로 미북 관계 진전은 물론 장기적 포괄적 접근에 의한 대북 포괄협상의 추진력이 생겨났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회담 타결에도 불구하고 관련 문제들이 쉽게 풀려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먼저 대북 포괄협상이 조만간 성사되어 제반 현안을 일괄 타결해 나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작다. 북한은 개별 협상을 통해 미국의 양보를 최대한 얻어내려 할 것이다. 설령 강석주(姜錫柱) 외교부 제1부상이 미국을 방문한다 해도 현안의 설정 및 협상 방식 등 포괄협상의 본격 추진에는 상당한 걸림돌이 있다.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유보는 그동안 재발사를 ‘자주권’에 속한다고 주장해 온 것에 비추어 분명한 입장 변화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계기로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생존전략 차원에서 추진중인 미사일 개발 계획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그들은 앞으로로 수출 중단, 개발 및 배치 중단 등 관련 사항들을 최대한 다단계화하여 협상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미사일 계획을 유지하는 한 반대급부가 모자라거나 다른 이유를 빌미로 언젠가는 재발사를 강행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도 추가적 시행이 불투명하다. 대북 제재는 적성국교역법 수출관리법 통상법 등에 의거하여 행정부가 관장한다. 이 가운데 동결자산 해제, 해외법인의 투자 및 무역 허용, 북한산 추가수입 허용 등은 행정부 단독 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출입 제한이나 투자제한의 전면 철폐는 미국 외교의 특성상 의회에서 적극 개입할 소지가 있다. 공화당이 의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행정부의 제재 해제는 제한을 받을 것이며 내년의 대선 정국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베를린 합의는 아직 상황을 낙관하기에는 미흡한 초기 단계의 합의이다. 현 상황을 제네바 합의 과정에 견준다면, 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뒤 그 해 6월 미국 북한간 1차 고위급회담에서 탈퇴 유보가 발표된 시점 정도에 해당된다. 미완성 상태였던 핵에 비해 미사일은 이미 완제품이 나왔고 더욱 위협적인 방향으로 성능이 개량되고 있다. 수출 동결이나 개발 중단을 위해서는 상당한 반대급부가 제공되어야 하고 협상을 위한 시간도 더 필요하다.

어쩌면 중간에 새로운 위기가 있을 수 있다. 대북 포괄접근의 큰 방향에 맞추어 북한을 협상 틀로 유도하고 관련 현안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한국미국 일본의 지속적 노력이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서주석(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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