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무원 결재 단계 줄여랴

  • 입력 1999년 9월 11일 18시 23분


그러려니 하기는 했어도 이건 정도가 심하다. 공무원들은 평균 4.4명의 상관에게 결재를 올려야 하고 보고서 장수는 민간기업의 3.5배에 이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윗사람 결재받고 보고서 만드느라 세월 다 보내는 셈이다. 물론 결재도 받아야 하고 보고서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결재 과정 많고, 보고서 많이 만드는 조직치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돌아가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국정의 중추라 할 정부기관일수록 비효율적 비생산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기획예산처가 한국행정연구원에 의뢰해 정부부처 과장급 이하 공무원 6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그와 같은 결론은 자명해진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재자 수는 민간이 3명에 정부는 4.4명, 결재에 소요되는 일수도 그만큼 늘어 민간이 1.2일인데 비해 정부는 그 두 배가넘는 2.5일로 나타났다. ‘늑장 행정’이 구조적임을 알 수 있다.

결재가 늦어지는 이유를 보면 ‘상사가 바빠서’가 절반 이상인 51%이고, ‘결재단계가 많아서’는 26%, ‘불필요한 수정요구’가 13%다. 나름대로 사정도 있고 이유도 있다고 하겠지만 ‘상사가 바빠서’ 결재가 늦어진다는 것에 일반국민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을까.

전자결재의 경우 정부 중앙부처가 고작 2%로 민간기업의 50%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 정보화시대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예산문제도 있겠지만 직접 도장을 찍어야 자리가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낡은 의식과 묵은 관행 탓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재벌 개혁이 이토록 어려울지는 몰랐다”고 토로했다지만 정부 개혁도 그에 못지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부 개혁의 경우 상당 부분 정부 자체가 개혁의 발목을 잡거나 왜곡시켜 왔다는 점이다. 이 정부 들어서도 두 차례의 정부조직개편이 있었고, 2001년말까지 공무원 총원의 10.5%인 1만4000여명을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3월의 2차 정부조직개편에서는 장차관이 2명 더 늘어나는 등 정부 상층부의 몸집은 오히려 비대해졌다. 공동정권의 지분 나누기 같은 정치논리와 부처 이기주의 등이 복합된 결과였다. 공기업 개혁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작은 정부’로의 개혁은 여전한 과제다. 그렇다고 조직을 통폐합하고 공무원 수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보다는 공무원 사회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도장 찍는 단계를 줄여 결재기간부터 단축해야 한다. 형식적인 보고서도 줄여야 한다. ‘내부의 규제 개혁’이다. 정부 개혁은 이런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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