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배우자도 맏상주

  • 입력 1999년 8월 25일 18시 42분


사람이 죽은 후 장사지내는 상례(喪禮)는 관 혼 상 제 사례(四禮)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예법이다. 우리 상례의 원전은 고려 말기 중국에서 들여온 ‘주자가례(朱子家禮)’라고 한다. 그러나 상례는 세월에 따라 변해 왔고 또 지방에 따라 변형이 많다. 어떻든 지금의 상례는 조선조 숙종 때 이재(李縡)가 엮은 ‘사례편람(四禮便覽)’이 그 교과서로 되어 있다.

▽‘사례편람’에 따르면 상주(喪主), 즉 요즈음 말로 맏상주는 죽은 사람의 장자가 된다. 장자가 없으면 죽은 사람의 장손(長孫)이, 그리고 장손마저 없으면 장증손 장고손으로 내려간다. 그런데도직계손이없다면어떻게 될까. 그때는 가장 가까운 촌수의 친족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상주가 된다. 아내의 상(喪)에서는 남편이 상주다. 그러나 남편이 죽었을 때 그 아내는 상주가 될 수 없었다. 그 아내는 보통 주부(主婦)라고 부른다.

▽정부가 이번에 마련한 ‘건전가정의례준칙’제정안은 남편이 죽었을 경우 그 아내도 맏상주가 되도록 했다. 아내라는 한정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여자도 ‘상주권(權)’을 갖게 된 셈이다. 하기는 우리 민법은 남편이 사망했을 때 자식들과 동순위의 상속권을 갖는 아내가 오히려 균배된 재산의 2분의 1을 더 받도록 하고 있다. 상속에 있어서는 아내가 합당한 권리를 찾았으나 상례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건전가정의례준칙’에 대해 일부에서는 ‘아무리 그렇다해도 여자가…’라는 식의 반발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요즈음 처럼 자식들 없이 부부만 살거나 딸만 둔 가정을 생각하면 ‘되먹지 않은 일’이라고 욕만 할 일이 아니다. 상주 없는 장례에 비하면 아내가 상주가 되는 것이 누가 봐도 자연스럽다. 일생을 반려자로 살아온 아내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남편의 상주가 되는 것은 보기에도 좋다.

〈남찬순 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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