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체없이」 통지해야

  • 입력 1999년 8월 19일 19시 11분


느닷없이 몇사람이 달려들어 자신을 무조건 차량에 태운다고 가정해보자. 신분증도 보여주지 않고 ‘가보면 안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없다. 요즘같은 무서운 세상에 ‘아이구 이거 납치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는게 정상일 것이다. 하물며 가족 입장에서는 기다리던 가족이 연락도 없이 귀가하지 않고 있다면 더욱 불안할 것이다. 가족은 경찰에 납치나 실종신고를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이런 기막힌 일이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서울지검은 최근 피의자 두사람을 각기 체포해 조사하면서 즉시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아 가족들이 납치신고를 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소동이 빚어졌다는 보도다. 그렇다면 검찰수사관들이 피의자들을 체포하면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 등을 반드시 알려주게 돼있는 ‘미란다 원칙’이나마 제대로 지켰는지 의문이다. 검찰 스스로 이런 가장 초보적인 사항마저 외면하면서 어떻게 경찰을 지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피의자를 체포 또는 구속할 때는 가족 변호인 등에게 그 이유와 일시 장소를 ‘지체없이’ 통지하도록 헌법(12조5항)과 형사소송법(87조)은 명시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의 기본권인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등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체포 구속은 불법체포 불법구속으로 간주하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이같은 입장은 대법원 판례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법원은 90년 ‘피의자에 대한 변호인의 접견이 부당하게 제한되고 있는 동안에 검사가 작성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검찰은 이번 두 피의자의 경우 ‘24시간 내에’ 통지하게 돼있는 형사소송규칙에 따라 그 시간 안에 통지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늦어도’ 24시간 내라는 뜻을 간과하고 있다. 이는 ‘가급적 빨리 통지하라’는 취지이지 24시간 안에만 하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해석해선 안된다. 헌법과 형사소송법 규정의 표현대로 ‘지체없이’ 통지하는 것이 원칙이다.

검찰은 현정부 출범이후 공안사건 분야에서조차 ‘신(新)공안’이라는 개념을 새로 내세울 정도로 인권을 중시하겠다는 다짐을 기회 있을 때마다 천명해 왔다. 그러나 입으로만 인권을 외칠 뿐 실천은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정치인관련 사건 등 사회의 이목을 끄는 사건에서는 합법적 절차를 밟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반면 일반시민의 인권은 쉽게 무시하는 태도는 기본이 안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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