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끝 안보이는 「가부장 정치」

  • 입력 1999년 8월 16일 18시 39분


여권이 ‘후(後)3김시대’라는 표현의 부당함을 역설하는 것을 보면 대통령의 심기가 무척 불편한 모양인데, 하긴 그도 그럴 만하다.

알다시피 JP는 예나 다름없이 ‘영원한 2인자’로 남아 있다. YS는 극심한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권좌에서 내려온 인물이다. 인권과 개혁의 기치를 들고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끌어냈고 국가부도 위기를 이겨낸 김대중대통령을 그 두 사람과 같은 반열에 세우는 것이 유쾌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리 억울한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YS의 정치 복귀가 ‘후3김시대’ 도래의 원인인 것도 아니다. 우리 정치는 3김시대를 졸업한 적이 없다. YS의 복귀는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3김시대는 ‘정치적 가부장(家父長)’의 지배를 의미한다. DJ와 YS가 ‘정통야당의 제1인자’ 자리를 놓고 경쟁과 협력을 반복한 반독재투쟁의 기수였음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반면 JP는 ‘근대화혁명가’ 박정희를 도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국부(國父)’ 박정희를 모시고 일했던 개발독재의 2인자였다. 하지만 ‘정치적 가부장’이라는 점에서 세 사람은 닮은 꼴이다.

전두환 일파의 쿠데타와 탄압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시대는 더 일찍 열렸을 것이다. 군사독재가 사실상 막을 내린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지금까지 우리 정치를 지배한 것은 이 ‘정치적 가부장’들의 권력투쟁이다. 3김은 박정희와 전두환 등 독재자와 싸울 때는 민주적 가치와 기본원리를 옹호했지만 자신이 권력을 잡은 곳에서는 스스로 철저한 가부장이 된다.

그들은 모두 민주적 공화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철인정치(哲人政治)를 신봉하며 스스로를 철인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이끄는 정당에 몸담은 정치인들은 가부장이 내각제를 합의할 때나 그 약속을 파기할 때나, 당을 합칠 때나 쪼갤 때나, 당명을 바꿀 때나 신당을 만들 때나 결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가부장의 비위를 거슬렀던 정치인은 거의 예외없이 다음 선거에서 낙선의 비애를 맛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정치적 가부장들의 권력은 지역적 결속이라는 원시적 유대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책과 노선에 대한 토론은 이 원시적 유대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가부장의 명령에 대해 시비를 가리려는 사람은 ‘불충(不忠)’ ‘배신’ 따위의 비난을 받는다.

추종자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크기는 가부장의 권력이 강할수록, 그리고 가부장과 가까이 있는 만큼 커진다. 의사결정 과정은 불투명하고 도처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가 통용된다.

DJ가 자신을 전임자와 구별짓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후3김시대’는 당분간 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을 3김에게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 여야 총무들 사이에 나이를 따지는 욕설이 난무하고 3김 청산을 주장하는 야당 총재가 “나와 생각이 다르면 당을 떠나라”는 독선을 서슴지 않는 것이 우리 정치판이다.

3김과 노선을 달리한 정치인을 모조리 낙선시킨 국민은 또 무슨 권리로 그들을 욕할 것인가. 그러니 괜히 열받지 말자.

다음 총선에서 민의(民意)의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한 ‘후3김시대’가 우리 정치와 국민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증거는 앞으로도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시사평론가)s2smrhyu@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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