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한탕’뒤의 금감원

  • 입력 1999년 8월 6일 19시 05분


‘한탕 잘 해먹었다가 얹힌’ 금융범죄 사례 하나를 보태는 것으로 그냥 접어둘 일인가. 그래서는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수해처럼 금융비리도 대형화됐으면 됐지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세종증권 김형진(金亨珍)회장이 회사채를 불법거래해 53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사건을 두고 하는 얘기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감독국이다, 자산운용검사국이다 하는 조직은 도대체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지난해 채권시장은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바로 그 기간에 김회장은 자금난이 심각해진 30여개 기업의 회사채와 국공채를 1조7000억원어치나 인수했다. 그리고 몇단계의 불법과정을 거쳐 투신사들이 비싼 값에 사들임으로써 이들 회사채의 발행이 성사됐다. 이런 ‘이상한 일’을 전혀 알지 못했거나 아무런 점검도 없이 넘겼다면 금감원은 ‘핫바지’인가.

▽알고도 ‘바로 그런 게 채권시장의 현실’이라며 눈감았다면 잘못된 시장관행에 대한 개혁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상대하기 어려운 외압(外壓)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김회장의 불법거래에 대한 소문은 돌았지만 밝혀내기는 어려웠다’는 금감원의 코멘트는 아무래도 한심하다.

▽채권 발행회사와 김회장간에 분쟁이 생기고 투서들이 날아들어 결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뒤에 금감원이 취한 태도는 또 어떻게 봐야 하나. 고작 한다는 게 사건을 묻어달라고 검찰에 요청하는 일이었나. 이는 감독당국이 범죄은폐를 기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불법거래를 일일이 파헤치면 회사채시장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현실판단엔 일리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비뚤어진 시장구조를 방관하고 더 나아가 비리를 덮는 것이 금융개혁인가. 불법이 판치는 채권시장뿐만 아니라 금감원 스스로 금융개혁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게 아닌가.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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