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윤성/‘독한 술’권하는 酒稅정책

  • 입력 1999년 8월 4일 19시 42분


어떤 술을 어떻게 마시면 건강을 해치지 않고 정신적인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독한 술이든 약한 술이든 마시는 양과 방법이 문제다. 어떤 술이든 적게 적당하게 마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천천히 안주나 식사와 함께 마시는 것이 좋다.

고도주(高度酒)는 적은 양으로도 많은 알코올이 빨리 섭취되기 때문에 건강에 나쁘다. 맥주와 같은 저도주로 취하려면 많은 양을 마셔야 한다. 40도짜리 양주 한병은 700㎖이다. 같은 양의 알코올을 맥주로 마시려면 500㎖짜리 병으로 13병이나 된다. 인간의 위로는 도저히 다 마시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소화도 불가능한 양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낮아질 때 생기는 금단증상을 피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적은 돈으로 원하는 알코올 농도를 맞추려고 중독자들은 도수 높은 술을 마신다. 맥주와 같은 약한 술로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알코올 농도까지 올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돈도 많이 든다.

알코올로 생길 수 있는 간 손상은 낮은 농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정 수준 이하의 알코올 농도로는 간에 전혀 손상이 없으나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손상이 생긴다. 간세포에 지방분이 끼기 시작해 비교적 많은 세포에 지방이 침착한 상태를 지방간이라고 한다. 이 정도에서도 술을 끊고 간을 쉬게 하면 대개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지방간에서 정도가 더 지나치면 간세포가 죽으면서 염증이 생긴다. 알코올성 간염이다. 이때는 그래도 회복할 여지가 있다. 회복하는 정도보다 손상받는 정도가 더 크면 간에는 흉터가 생긴다.

이같은 흉터가 많이 생기면 알코올성 간경변이 된다. 일단 간경변에 이르면 정상회복은 힘들다.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간경변에 따른 여러가지 합병증을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 밖에도 술 때문에 생긴 건강장애는 얼마든지 있다. 결국 건강에 관한 한 술은 득보다 실이 많다.

‘술을 강권하는 사회’라고 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약한 술을 천천히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독한 술을 권하는 음주문화와 주세제도를 갖고 있다.

주종별 주세율이 맥주 130%, 양주 100%, 청주 70%, 소주 35%이다. 가장 알코올 도수가 약한 맥주에 왜 가장 높은 세금이 부과되는가.

60년대에 서민들은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고 부자들이 맥주를 마셨다. 그때 매겨진 맥주 세율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맥주가 더 이상 고급술이 아닌데도 말이다.

선진국의 주세 정책은 국민 건강을 우선 순위로 고려한다. 국민 건강을 해치는 독한 술에는 높은 세율을 부과해 소비를 억제하고 차라리 약한 술에 낮은 세율을 부과해 국민 생활을 활기 있게 만들자는 적극적인 술 문화정책이다. 맥주와 같은 저도주의 세율이 양주나 소주 같은 고도주의 세율보다 높은 현 주세체계는 국민 보건정책에 반하는 시대 착오이다.

이윤성(서울대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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