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78)

  • 입력 1999년 7월 26일 18시 33분


비둘기들 중에는 발목이 오그라진 절름발이가 제법 있었다. 그것은 수인들의 낚시질 때문이었다. 방안에서 사로잡히면 기르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배가 고파서 주로 잡아 먹으려고 낚시질을 했다는데 쥐나 참새도 잡았고 언제부터인가 비둘기 낚시질은 저들의 소일거리였다. 운동시간이 없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하루 종일이나 또는 국경일의 연휴 때에는 하루가 지긋지긋하게 길기도 하였다.

그런 날 오후가 되면 비둘기 낚시질 따위를 하는데 먼저 낚시 도구를 정성들여 만들었다. 땅콩을 까서 가운데를 실로 단단히 묶고 긴 실의 다른 끝에다 다시 땅콩 한 알을 매달았다. 이것을 그냥 쓰기도 하고 이 실에 긴 실을 이어서 창 안에서 쥐고 있기도 한다. 전에는 장갑이나 양말의 면실을 풀어서 썼지만 이제는 나일론 실로 잡아매기 때문에 거의 끊어지는 일이 없다. 배고팠던 시절에는 잡은 비둘기를 구워 먹거나 삶아 먹었다. 휴지 뭉치 한 개로 라면을 끓이는데 휴지를 반 팔 길이씩 끊어내어 손으로 비벼서 가느다란 불쏘시개를 만들었다. 비둘기 한 마리도 소금을 뿌려 이것으로 변소에 앉아 구우면 연기도 나지 않는다. 겨울철에는 공장 난로에다 양동이를 얹어 삶았다고 한다. 이제 먹는 일은 사라지고 그냥 낚시질만 소일거리로 남은 셈이다.

그러므로 수인에게는 창 밖의 자유롭고 한가한 비둘기의 삶에 대한 일종의 잔인한 복수 놀이가 된 것이다. 그들은 낚시 줄을 쥐고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냥 땅콩으로 만든 덫을 던져 놓고 걸려든 비둘기가 허우적거리는 모양만 보면 되었으니까. 튼튼하고 가느다란 나일론 줄의 양 끝에 매단 땅콩을 모이와 함께 던져 놓으면 비둘기는 실에 매인 땅콩을 차례로 찍어 삼킨다. 그러면 부리 끝으로 실이 늘어지게 되고 비둘기는 이 실을 떼어내려고 한 발로 실을 움켜쥐고 잡아 뜯는다. 몇번 같은 동작을 하는 사이에 실은 부리와 다리에 엉켜서 비둘기의 몸을 웅크리게 만든다. 이제는 몸부림을 치면서 실을 끊어내려고 두 발을 허우적거리며 날아 오른다. 조금 날다가는 떨어지고 다시 날아 오르고 하다가 발목이 끊어지기도 하고 부러지기도 한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오그라진 비둘기의 동작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런 것들은 무리에서 언제나 조금 뒤처져서 따로 있다. 모이가 있어도 끼어들지 못하고 지붕 위에 앉아서도 두어번 깡충거려 볼 뿐 거닐지도 못한다. 내가 순이를 대장과 함께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암수 한 쌍의 부부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유심히 관찰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는 이 아름다운 암비둘기를 사랑했다. 땅콩 모이를 창턱에 뿌려 놓으면 영치 창고에서 기다리던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그들은 힘센 서열대로 서로 밀치고 퍼덕이면서 다투어 창턱의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겁이 많은 비둘기들은 무리로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로 한 두 마리가 날아드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무리가 오기 전이던가 아니면 한 차례 먹고 간 다음이던가 잘 생긴 순백색의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놈은 아마도 전에 다른 비둘기들과 더불어 몇번 이 창턱에서 내 모이를 받아 먹었을 것이다. 혼자 찾아온 비둘기는 창턱에 앉아서 부리로 두드리듯이 비닐 창을 툭툭 쪼았고 나는 창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다른 비둘기들은 창이 열리면 얼른 창이 닫힌쪽으로 이동하거나 창고 지붕 위로 달아나 버리지만 이 녀석은 그냥 앉아서 나를 당당하게 바라보며 꾸루룩 꾸루룩 하고 낮게 울었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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