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형자 리스트」 왜 자꾸 나오나

  • 입력 1999년 6월 20일 20시 13분


무슨 무슨 ‘리스트’니 ‘설(說)’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생성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그 내용이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관계당국의 대응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허다함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보아온 대로다. ‘옷 로비’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해명성 짜맞추기’로 끝난 이후 나돌기 시작한 ‘이형자 리스트’ 역시 ‘미완(未完)의 검찰수사’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남북한군의 서해교전사태 등 긴장감이 높아진 안보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중에는 ‘이형자 리스트’가 계속 나돌고 있다.

김태정(金泰政)전법무장관 부인은 물론 현정권의 최고위층 부인들이 최순영(崔淳永)신동아그룹회장의 부인 이형자(李馨子)씨로부터 값비싼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 ‘이형자 리스트’설의 골자다. 이같은 설이 18일 국회에서까지 거론되자 정부는 ‘터무니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이기택(李基澤)고문의 부인은 김태정씨 부인에게 건네진 밍크코트는 세벌로 1억원어치였다는 말을 이형자씨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소문과 주장이 왜 끊임없이 나도는가. 우리는 그 이유가 대다수 국민이 검찰의 수사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데 있다고 본다. 김태정씨가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직에 버티고 있는 상태에서 그 부인을 수사한 점과 그녀를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보호한 점, 로비혐의 당사자인 이형자씨와의 대질신문을 하지 않은 점 등은 수사결과를 따지기 이전에 누가 봐도 공정성을 잃은 것이다. 외관상으로도 이러할진대 수사의 내용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검찰발표를 따르더라도 문제의 밍크코트 반환 경위는 설득력이 약하다. 신정(新正)이 끼여 있었다고 하나 반환에 열흘이나 걸린 것부터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기도원에 간 날 돌려줄 생각으로 코트를 갖고 나오면서 쇼핑백에 넣지 않고 팔에 걸치고 나왔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기도원에 간날 코트를 입었다고 진술했다는 사직동팀 조사결과와는 왜 다른가. 이런 수많은 의혹을 풀지 않은 채 덮어 버렸으니 항간의 의혹은 부풀려질대로 부풀려져 리스트 형태로 나도는 것이라고 본다. 적지 않은 검사들까지 수사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국민회의는 ‘이형자 리스트’를 거론한 야당의원을 국회윤리위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의혹의 명확한 진상규명을 촉구한 것이 어떤 윤리규정에 위배된다는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옷 로비’의혹사건이 빚은 민심이반의 본질을 아직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법무장관도 바뀐 만큼 검찰은 이 사건을 재수사하고 국회차원의 국정조사도 서둘러야 한다. 진실만이 의혹을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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