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35)

  • 입력 1999년 6월 6일 18시 16분


그렇게 헤어지고 삼 사 년간 그는 잘 살아냈고 일 년에 한 두 차례씩 가족들의 편지를 통해서 그의 소식을 알려왔다. 오 년쯤 지난 뒤에 나는 운동시간에 남도쪽에서 이감 온 신입 공안수에게서 오랜만에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최동우 선배는 지금 병동에 있습니다.

아니 그 친구가 왜 그리루 갔지?

저 있던 데가 결핵병동하구 정신병동이 있는 교도소거든요. 작년에 이감 오셨어요.

증세가 심한가?

대개 그렇잖아요. 심해져야 일반 교도소에서 그런데루 옮기죠. 아무도 못알아본대요.

나는 이감 가기 전에 살던 데가 생각나서 그의 상태를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내가 있던 공안수 특사는 이층이었고 아래층이 병사였다. 긴 복도의 절반을 잘라 칸막이를 해놓고 입구에서 절반은 가벼운 환자들이 있었고 쇠창살로 막아 놓은 안쪽에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바로 내 방 아래가 정신질환자들의 방이라서 나는 그들의 기척을 잘 알고 있었다. 복도의 창살에서 가까운 곳은 비교적 가벼운 환자들이 있었고 제일 안쪽에 거칠거나 난폭한 자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내 방 아래쪽도 무기수였다. 그는 처음에 삼청교육대에서 감시하는 군인에게 반항하다 그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거의 죽지않을만큼 맞고는 일반교도소로 이감을 왔다고 했다. 교도소로 와서는 공장에 작업 나가서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켰고 무의식중에 동료를 망치로 때려 죽였다. 그는 정신착란 중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무죄와 자기를 해치려는 적들에 대하여 항변하고 연설을 했다. 누군가 찾아오는지 토론을 벌이기도 했고 저녁마다 정견발표를 하곤 했다. 한밤중에 그가 질러대는 비명소리는 처참했다. 사동의 아래 위층 사방에서 제발 잠 좀 자자고 마주 질러대는 다른 수인들의 고함과 교도관들의 호령 소리로 새벽의 전 옥사가 떠들썩해지곤 하였다. 나는 아래층 그들의 화장실 창과 오물탱크가 있는 비좁은 남향받이 앞마당에 나의 밭과 침구와 빨래 건조대를 허락 받고 있어서 가끔씩 그들의 얼굴과 마주칠 때가 있었다. 내가 상추 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느닷없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며 시작되는 그의 정견발표였다. 저를 국회의원으로 뽑아 달라고 하는 것이 마지막 인사였는데 그러고나서 어디서 들었는지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타도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길길이 뛰며 그의 외침을 막던 교도관들도 으레 그러려니 하며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 정도가 평온할 때이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갑자기 조용해지는데 오물을 식기에 담았다가 시찰을 도는 과장이나 계장에게 뿌려주기도 했다. 나는 가끔 앞 뜰에서 화장실 창으로 내다보는 그의 얼굴과 마주치곤 했다. 그는 먼 곳을 응시하는지 내가 보이지 않는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창가에 서있었다. 끼니 때마다 밥을 넣어주면 먹는 날도 있지만 그냥 방바닥에 버리고 사방에 오물을 발라 놓는 날이 많아서 사흘에 한번씩 씻기고 청소하고 빨래해주고 하는 소지 아이들이 진저리를 쳤다. 그는 육개월이면 어김없이 정신병 교도소로 갔다가 조금은 얌전해져서 되돌아오곤 하였다. 그는 한 삼 년쯤 그렇게 오락가락 하다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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