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5·16반대 前6군단장 김웅수박사

  • 입력 1999년 5월 26일 19시 17분


61년 5·16 군사쿠데타가 나던 해 6군단장이었던 김웅수(金雄洙·76)소장의 나이는 39세. 5·16에 반대해 반혁명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투옥된 지 1년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나 미국으로 떠났다.

40세에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에서 1학년 과정부터 공부를 시작할 때에도 언젠가는 귀국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72년 워싱턴에서 유신반대 데모를 ‘주동’하고 나서는 고국에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됐다. 박정희(朴正熙)정권에 협조하면 귀국할 수도 있었지만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군인으로 남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귀국을 포기했다.

예비역 장성의 혜택도 버리고 부인 박실모(朴實模·72)씨와 함께 4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우면서 학업에 정진해 10년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55세이던 77년 워싱턴 근교의 가톨릭대 경제학과 정교수가 됐다. 전공은 경제발전론과 수리경제학. 박전대통령이 사망한 뒤에 일시 귀국, 고려대와 연세대에서 교환교수로 일하기도 했고 가톨릭대에서 은퇴한 뒤에는 고향인 충남 논산으로 귀향해 건양대에서 4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워싱턴에서 한국학국제협회(International Council on Korean Studies) 재단이사장으로서 후학들을 뒤에서 돕고 있는 김씨는 파란만장한 삶을 정리하는 회고록을 집필하고 있다. 이 협회는 한국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Studies)이라는 간행물도 내고 있다. 김일평(金一平)코네티컷대 교수가 편집위원장을 맡고 편집위원으로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교수 등이 일한다.

미국 과학아카데미부설 공학연구소 부회장인 차남 용회(容會·45)씨의 집에서 일시 기거하고 있는 김씨는 “원칙을 갖고 사는 인생은 외롭다”면서 “아마 미국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원칙을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원칙이 많이 무너졌다”며 “동서화합의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이를 위해 박전대통령을 미화하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자세는 쿠데타세력과의 원칙없는 타협일 뿐이며 국민의 역사관에 혼동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특히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집권할 때부터 5·16 쿠데타에 반대, 강등되거나 투옥돼 연금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군인들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기록을 바로잡아달라고 청원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면서 “역사바로세우기나 제2건국운동은 이런 부분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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