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키드]경기 분당 양호석씨네

  • 입력 1999년 5월 10일 19시 39분


집에도 더운 물은 나온다. 욕조도 있다.

양호석(33·MCS로직스 차장·반도체 디자이너) 윤정애씨(33·주부·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가정. 그러나 주말이면 양씨는 아들 승규(7·불곡초등학교 2학년) 승재(3)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간다.

‘솔직한’ 남자들이 북적이는 대중 목욕탕에서 양씨 부자는 탕 속에서, 또는 등을 서로 밀어주며 숨김 없는 ‘남자 대 남자’로 1, 2시간씩 만난다. “아빠, 난 소연(가명)이 좋아. 그런데 걔는 내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기 죽을 필요 없어. 가서 당당하게 얘기를 해, 친하게 지내자고. 너를 싫어할 이유가 있니?”

▼ ‘총무’의 정보수집 ▼

‘왕따’문제, 자살, 미국 학생의 총기난사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양씨는 대중목욕탕에서 아이들의 몸에 혹시 상처가 없나 꼼꼼히 살핀다. 승규가 생일이 빨라 반친구들보다 한 살 어린 게 마음에 걸린다.

어머니 윤씨는 학기초 승규반 어머니회의 총무를 자청했다. 일주일에 1, 2차례 급식을 도와주고 가끔 간식도 갖다 주며 교실 분위기와 승규의 표정을 체크한다. 수시로 다른 어머니들과 만나 정보를 교환하며 아들의 학교생활을 분석하고 있다.

▼ ‘팽이’만으로는 부족 ▼

아이들과 대화에서 ‘해라’식 명령형이나 ‘안된다’ ‘틀렸다’식의 부정형(否定型)의 사용을 자제한다.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승규에게는 다소 어려운 조립식 장난감을 사준다. 관심 있는 일은 2, 3시간씩 소변을 참으며 열중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은연 중 알려주기 위한 것. 더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생각.

“우리 어렸을 때는 팽이치기면 족했고, 부모님은 그런 것들을 사 주셨어요. 요즘 애들의 욕구는 광범위합니다.보고 배우고 즐길 게 널려 있는데 팽이만 던져 줄 수는 없어요.”

▼ 기본기와 감수성 ▼

영어와 컴퓨터 실력은 21세기인의 ‘기본기’라는 생각. 양씨는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용 워드프로세서를 갖고 놀면서 아이들이 컴퓨터와 친해지게 한다. 생일에는 초대장을 컴퓨터로 함께 만든다. 승규에게는 교육방송의 ‘헬로 잉글리시’를 녹화한 테이프와 비디오 영어교재를 매일 30분∼1시간씩 보여준다. 윤씨는 말이 늦은 승재와 함께 낱말카드 놀이교구를 이용해 한글과 영어를 공부한다.

승규에게 창의성을 길러주기 위해 미술을, 감수성 발달을 위해 피아노를 배우도록 하고 있다. 물을 무서워 해 6개월째 수영강습도 받도록 하고 있다. 요즘에는 처음 타는 두 발 자전거에도 겁 없이 오르고 여행갈 때도 서슴없이 앞장선다.

▼ 양씨식 ‘조건없는 사랑’ ▼

불량식품을 사 달라고 조르면 주저 없이 사준다. 몇 번 배가 아파 뒹굴게 해 불량식품을 구별하는 ‘노하우’를 갖도록 하기 위한 것. 나쁜 것이라도 일단은 경험하게 한다. 용돈은 가급적 ‘노동의 댓가’로 지불한다. 승규와 승재는 용돈을 받기 위해 심부름이나 방 청소를 해야 한다. 양씨부부는 ‘조건 투성이’인 세상을 사는 조건을 갖추도록 돕는 게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분당〓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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