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누구시라구 전할까요?
나는 목소리를 깔고 입술을 오무려 둔탁하게 발음하려고 애썼다.
김전우라구 합니다.
김…전, 우, 씨요?
혜순이는 이쪽이 오현우인줄 눈치는 못채고 뭔가 미심쩍다는 듯이 간격을 두더니 형 전화 받어 하는 소리가 건너왔다.
전화 바꿨습니다.
나야, 김전우야.
성님이요? 아무 일 없었제?
그럼, 잘 지내구 있다.
고생은 안허요?
나는 최동우의 안부를 묻기로 하였다.
인천 사람은 잘 있겠지?
건이가 동우 얘기인줄 금방 알아 차렸다.
아 그러지라. 인천 형은 성함이 한일군 씨라구 합디다. 헌디 어찌 이렇게 애를 태워쌌소. 적어도 일 주일에 한 번씩은 연락을 주셔야지라.
미안하다. 먹구 살기 바빠서 말이야. 그럼 이만….
잠깐 잠깐만요, 일군이 성님이 헤지던 디서 좀 보잡디다.
언제?
내주 초에 연락 주시쇼.
나는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 들를 작정이었다. 박 형은 임 사장과 공단에 납품 들어갔으니 좀 늦을 모양이었다. 퇴근 직전에 임 사장과 함께 트럭을 타고 나가는 박 형에게 내가 저녁 준비를 할터이니 일찍 들어오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던 터였다. 박도 잊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그의 생일이니까. 나는 며칠 전부터 그가 달력의 날짜 위에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은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 시간의 시장은 온통 퇴근한 여공 아가씨들과 아낙네들로 어깨를 수없이 부딪칠만큼 복잡했다. 삼겹살 세 근 사고, 파 마늘 풋고추 상추를 사고, 된장찌개 거리로 두부 한 모, 호박, 감자를 샀다. 비닐 봉지에 담아 양손에 들고 오다가 시장을 벗어난 번화가쪽에까지 나아가 양과점에 들렀다. 제일 싸고 장식도 덜 요란한 수수한 케이크 하나를 박의 나이 서른 하나에 맞는 초 네 개와 함께 샀다.
오늘 생일 잔치는 우리 집에서 하지 않고 명순씨네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나는 지난 주에 박형과 함께 처음 그 집에 가보았으니 이번이 두 번째인 셈이다. 그 며칠 전 일요일에는 박형과 나와 명순과 순옥이 넷이서 영등포 극장까지 나가 영화구경도 하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 순옥은 대전 아가씨였는데 몸이 마르고 키가 큰 편이었다. 얼핏 보면 키 크고 멀끔하게 생긴 박과 남매처럼 보였다. 바지를 입은 뒷모습이 시골 아가씨 같지 않았다. 그러나 명순과는 달리 말수가 적어서 약간 답답한 편이었다.
<글 : 황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