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건축무한…」/李箱 시에 감춰진 음모찾기

  • 입력 1999년 4월 28일 19시 36분


상상력은 영화의 젖줄이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자.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왜 썼을까”하는 상상에서 비롯됐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쉬리’이후 줄을 잇는 대규모 한국영화 가운데 첫번째 주자로 5월1일 개봉한다. 이 영화의 출발점도 얼추 보면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그것과 흡사한다.

일제시대 총독부의 건축기사였던 이상(본명 김해경). 32년 ‘건축무한육면각체’란 시를 발표한뒤 이듬해 기사직을 그만뒀다. 그의 신상변화와 이 난해한 시를 쓴 이유를 자유분방하게 상상한 게 이 영화의 모티브다. 허구와 실제를 넘나들며 이상의 시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젊은이들의 모험담을 그렸다.

96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 당선작(작가 장용민). ‘쉬리’를 제작한 삼성영상사업단이 20억원을 투자해 영화로 만들었다.

시나리오의 참신한 발상과 함께 매끈한 시각적 효과도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 전체의 20분가량을 차지하는 특수효과에 대해 유상욱 감독은 “할리우드와 단순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지만 특수효과가 그렇게까지 조악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초반부에 형성됐던 긴장감은 ‘인디아나 존스’와 ‘전설의 고향’을 뒤섞어놓은 듯한 후반부로 치달아가면서 점점 맥이 풀린다. ‘이상 동호회’멤버인 덕희(이민우 분)가 실종된 이유를 추적해 들어가는 역을 맡은 신은경과 김태우의 연기는 비밀을 파헤치는 주인공치고 개성이 약하고 단조롭다.

결국 이들이 밝혀낸 음모의 실체는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일본의 책략. 영화의 현대적인 스타일에 비해 다소 맥빠지는 결론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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