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02)

  • 입력 1999년 4월 28일 19시 36분


나도 뒤가 좀 무둑했지만 그만 포기해 버리고 만다.

이 같은 악몽은 나중에 내가 감옥 가서 낡은 일제 시대의 구치소에서 다시 겪게 되었는데 처음 이삼일이 좀 고통스럽고 한 열흘쯤 지나면 적응하게 되던 것이다.

드디어는 뼁끼통의 오물 냄새에 둘러싸인 채로 세 끼 식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운다. 귀찮고 짜증나는 건 몇 분 동안이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끼리의 따뜻함은 늘 유지되기 마련이었다.

공장 일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나가면 임사장이 각 작업대에 그날 해야할 작업량과 수치를 알려 준다. 공장 인원은 임사장까지 합쳐서 여섯 명이었는데 내가 취직을 했으니 일곱 명이 되었다. 그 중에 기술자는 임사장과 박형과 남씨 아저씨 등 세 사람이고 나머지는 나보다 나이 어린 세 사람의 견습공들이었다.

작업 기계는 전기톱이 세 대이며 대패, 샌더, 드릴 기계와 대형의 원형 톱날 작업대가 있었다. 톱날의 모양은 널판이나 합판과 각목을 자를 때 다르고 직선과 곡선을 자를 때에도 달라진다.

나는 박형의 조수가 되었다. 그는 임사장에게서 작업 지시를 받고 먼저 규격에 따라 견본품을 만들었다. 그는 내게 그 견본을 내밀어 보였다.

오늘 오형 할 일은 이 각목을 천오백 개 자르는 거요. 시간 당 적어도 백오십 개는 잘라서 내게 넘겨 줘야 해.

각목은 한 뼘 정도의 길이였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죠?

텔레비 세트 다리요.

그는 내게 톱날 사용법을 가르쳐 준다.

그 발 아래 밸브를 누르면 톱날이 올라와요. 한번 더 밟으면 내려가고. 작업대 밑에 보이죠?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슈. 그걸 누르면 톱날이 돌아가요. 다시 누르면 돌아가고. 한 번 해 봐요. 자 이쪽에 눈금보이죠? 이걸루 규격을 맞춰야 해요.

나는 그가 이른대로 천천히 복습해 보고나서 실행에 들어간다. 내가 규격대로 자른 각목을 그에게 넘기면 그것을 그는 줄톱으로 비스듬하게 다듬는 식이었다.

나는 한 삼십 분쯤 지나자 곧 작업에 익숙해졌다. 날씨가 선선했지만 모두 상의를 벗거나 짧은 런닝 바람이었다. 손목 주위가 너덜거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일게다. 마스크와 고무 끈이 달린 안전 고글은 썼지만 모두들 작업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손가락 감각이 무뎌지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큰 나무들을 가늘게 자르는 일은 남씨가 원형 톱으로 해낸다.

다른 짝들은 라디오의 뒤에 대는 합판을 자르는 일이나 앞 판의 나무 상자에 소리 틈을 내고 장식을 하는 일을 했다.

텔레비전 다리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뿔처럼 기초 모형을 만든 뒤에 이튿날에는 박 형이 도맡아서 둥글게 깎고 홈을 팠다. 그걸 마무리 조에 넘기면 그들은 거기에 접착제를 바르고 고무 패킹을 붙였다.

점심 시간에 임 사장은 집으로 밥 먹으러 가고 남은 공원들이 함께 취사를 하는데 남씨는 꼭 도시락을 싸왔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통로 옆에 헌 찬장을 두었는데 그 속에 냄비나 그릇 등속이 있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취사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동안에 공장 앞 마당에 나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거나 둥그렇게 둘러서서 배구를 했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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