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94)

  • 입력 1999년 4월 19일 19시 35분


나는 임 중사네 목공장으로 찾아갔다. 그는 나보다 십년쯤 연상이었는데 군에서 우리 내무반 선임하사를 했다. 제대를 하고나서 이른바 복학생 운동권 악우들의 협박에 못이겨 공단 근처 야학에 강학으로 나가던 때에 그를 우연히 만났다. 야학은 대개 열 시에 끝났는데 그맘때 야간 근무조가 바뀌는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강학 친구와 가락국수에 소주라도 한 잔 하려고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몇 사람이 닭 똥집이며 쇠 염통이며 안주를 푸짐하게 구워 놓고 거나하게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늦게 들어서기도 했지만 호주머니 사정도 별 볼 일이 없어서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서 가락국수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중년남자 세 사람이 떠들썩하고 앉았는데 그중 둘은 어느 전자회사의 유니폼을 입었고 다른 한 사람은 양복차림이었다. 양복차림은 그들에게 과장님 반장님 하며 연신 술을 권했다. 야학에 나오는 여공들 가운데 전자회사에서 박한 노임에 시달리는 소녀들도 몇 있어서 나는 우리 편의 입장이 되어 곱지않은 눈으로 그들을 힐끔힐끔 노려 보았다. 양복차림이 우리쪽을 건너다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일단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나를 훑어 보았다. 나도 그를 알아보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가 상반신을 숙이고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군에서 어디 근무했소?

임 중사님, 접니다. 저 오현우예요.

야 임마, 그러면 그렇지 너 오 병장 아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 아까 니가 들어올 때부터 생각하구 있었거든.

그렇게 되어서 나는 그날 밤 임 중사와 이차를 했다. 임 중사는 내가 제대하던 비슷한 시기에 몇 달 차이로 먼저 직업군인 생활을 때려치우고 옷을 벗었다. 그는 제대 하고나서 구로공단의 전자회사 목공부에 말단 공원으로 취직을 했고, 직업군인을 하던 사람이라 곧 공장장의 눈에 띄어 채 일년도 못되어서 반장이 되었다. 기술교육도 받았고 공원들을 관리하는 능력도 있어서 다섯 해만에 임 중사는 노무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맘때에는 목공장을 운영하는 여러 가지 사항을 훤히 알게 되었고 납품할 곳이며 하청을 맡는 일이며를 처리할 수가 있게 되자 기술자 몇 사람과 함께 따로 나가 작은 목공장을 차린 것이다. 그는 이를테면 군대에서 제대하여 성공한 축이었다. 나는 술에 만취한 그를 따라서 안양의 그의 공장 옆에 있는 살림집까지 끌려갔다. 그는 우리 같은 야학 선생질이 뭔가 나라에는 해가 되는 불온한 행동이라고 어렴풋이 짐작을 하는 듯했다. 그래도 그런 일에 끼어들기는 두려워했음에도 어쩐지 외경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느이 하는 일이야 우리가 아냐? 다 뜻이 있는 일이겠지. 독립운동이 박 터지게 벌어져두 민초들이야 입에 풀칠하구 살아 남아야지.

임 중사는 이런 비슷한 소리를 술에 취할 때마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안양천변을 따라 올라갔다. 비포장 도로 가의 밭고랑 위에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공장 건물과 역시 규모만 작고 거의 똑같이 생긴 그의 살림집이 앞 뒤로 서있었다. 공장 앞 빈터에는 원자재며 작업 뒤의 잔품들이 무더기를 이루어 쌓여 있었고 벌써 길 위에서도 공장 안의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나는 공장 앞에 서서 기웃거리다가 판자문을 살짝 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런닝 차림의 임 중사가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입에는 마스크를 하고서 작업에 열중해 있는게 보였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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