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법개혁의 전제조건

  • 입력 1999년 3월 24일 19시 03분


8월까지 사법개혁안을 마련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로 곧 추진위원회가 구성돼 논의를 시작할 전망이다. 김대중(金大中)정부 출범후 각 분야에서 요란한 ‘개혁’의 시동이 걸렸으나 거의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사법개혁안 마련 지시’에 대해서도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개혁허무주의’ 분위기도 없지 않다. 이번에 확정된 정부조직개편안은 이를 더욱 부추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사법개혁은 더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일제시대의 틀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현행 사법제도로는 21세기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이 뜻있는 법조계 안팎 인사들의 지적이다.

사법개혁안은 법학교육의 정상화와 값싸고 질 높은 법률서비스, 법원 검찰의 독립과 중립 등 본질적 문제를 폭넓게 논의하고 그 기본 바탕위에서 구체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한 법조인 전문화도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개혁안의 구체적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겠으나 논의에 앞서 몇가지 전제조건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추진위를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나 이 기구에 독립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추진위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간섭은 물론 특히 법조계의 집단적 저항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개혁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김영삼(金泳三)정부 시절의 ‘미완(未完)의 사법개혁’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주체였던 세계화추진위원회는 제쳐놓고 정부와 사법부의 첨예한 대립끝에 적당히 ‘합의’한 것이 사법시험 합격자 증원이라는 당시 개혁안이었다.

둘째, 법조계는 기득권을 버릴 각오를 해야한다. 사법개혁의 첫발은 기득권 포기가 아닐 수 없다. 지난 수십년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다른 분야들과 달리 법조계는 구시대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들이다.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집단이기주의에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기업 은행 등으로 직역(職域)을 넓히는 사법연수원 졸업생이 늘고 소송보조업무만을 도와주는 ‘도우미 변호사’가 탄생하는 최근 현상은 법조계의 새 모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사적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이번 기회에 사법제도의 틀을 완전히 재검토한다는 뜻에서 안건이 제한되거나 시한에 구애돼선 안된다. 이미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는 점에서 개혁안을 빨리 확정지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으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진위 구성멤버가 법조인에 너무 치중돼서는 곤란하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도 폭넓게 들을 수 있는 틀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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